詩舍廊/반고개 추억

배꼽 마당

취몽인 2011. 11. 23. 15:56

 

 

 

 

 

 

배꼽 마당

 

 

 

 

누가 그 곳을 배꼽 마당이라 이름했는 지는 알 수 없다

 

반고개에서 궁디산으로 이어지는 비스듬한 언덕

땅골에서 시장통과 학교로 연결되는 여러 가닥의 골목들

수 없는 발걸음들은 어쨓든 그 좁은 곳에 걸쳐있다

동생이 태어났다는 소식에 집으로 돌아가던 꼬불꼬불한 길

해질녘 미끄럼을 타다 복숭아뼈 깊이 피흘렸던 굵은 모래 바닥

머리가 큰 공장집 형은 늘 텔레비젼에 본 듯했는데 아마 아닐 것이다

한 켠에서 우리를 바라보기만하던 뒷집 숙이는 마른 그림자 같았다

마당 한쪽을 가로막은 태권도 도장을 가로지르면 비밀스런 길이 있었다

쉽사리 갈 수 없는 그 길은 시장통에서 반고개로 가파르게 이어졌다

윙윙 기계 소리가 골목에서 늘 울고 있던 하얀 골목

우리는 그 골목을 배꼽의 속이라고 이야기하고 진저리를 쳤었다

간혹 배꼽 마당에서 아래로 달려 이금못으로 가기도 했다

늘 붉게 고여있던 못 가에는 잠자리를 좇는 조무랭이들 발 아래로

어젯 밤 버려진 탯줄 주머니가 아직도 피흘리며 둥둥 떠있고

우리는 꿰매어진 배꼽이 잠든 어느 집을 무서워하며 이야기했다

이금못은 배꼽 마당이 흘리는 마법이 고여있는 곳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제각각 부산하게 골목을 누비다가도 제의로 한 데 모이던 곳

주문처럼 웅성거리던 꼬마들은 얼떨떨한 눈빛으로 헤어졌다

밤 마다 거뭇한 하늘 위를 펄럭이는 누나가 나타난다고 했다  

궁디산 아카시아 나무에 목을 건 누나는 마당 옆 미장원 누나였다

얼굴도 없는 그녀는 지금도 깊은 곳에서 무시로 깨어나 섬뜩하다

만 가닥 골목 사이로 밀교를 전하던 창백한 배꼽 마당도 늘 비릿하던 이금못도

지금은 기억을 묻고 어느 생활이 눌러 앉았을 것이다

내가 세월을 깔고 기억 위에 주저앉은 것처럼

 

꺼지지 않는 꿈 배꼽 마당은 유년의 탯줄이 묻힌 심연의 이름이다

 

 

 

 

201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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