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오학년 팔반

취몽인 2011. 12. 16. 13:09

 

 

 

 

 

 

오학년 팔반

 

 

 

 

열두 살 오학년이 끝나고

열세 살 육학년으로 떠나는 시간

안경 낀 조영훈 선생님은 통지표를 건냈다

다른 것은 보이지 않았다

수가 달랑 두 개

지금까지 받은 열 번의 통지표 중

가장 가난한 통지표

 

아이들은 육학년으로 떠나고

이월의 마른 햇살만 남은 교실

비듬으로 빡빡 민 머리를 책상에 심고

펑펑 울었다

서럽고 억울하고 불안해서 울었다

누군가 등을 두드렸다

예쁜 현숙이가 마음처럼 서 있었다

 

눈두덩이가 띵띵한 나를 보고

추상같던 아버지는 암말도 안했다

암말도 안해 더 분했다

봄방학은 녹지 못하고

조영훈 선생님은 내 오학년에 붙들려 있었다

수가 두 깨뿐이라니

나의 열두 살은 도무지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열세 살 육학년은 치열했다

수는 다시 일곱 개가 되고

나는 조영훈 선생님을 조롱했다

그러나 그뿐 다시는 치열해지지 못했고

나는 수 우 미 양으로 섞여 살았다

예쁜 현숙이는

수용이 자전거 뒤에 타고 다닌다는 소문으로 떠돌았다

 

열두살 오학년 팔반은 지금도 내곁에 있다

내곁에 섰던 그녀도 아직 내 마음 속에 서있다

 

 

 

2011. 1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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