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베토벤 바이러스

취몽인 2011. 12. 19. 16:01

 

 

 

 

 

베토벤 바이러스

 

 

 

 

띠리리리 리리리리리

 

사흘에 한 번 꼴로

베토벤은 삼거리에 나타난다

싸구려 신디사이저로

엘리제를 위하여를 연주하면

뒷골목 깊숙한 곳에서부터

접신된 사람들이 끌려 나온다

제각기 묵은 악기들을

가슴에 안고 어깨에 지고 땅에 끌면서

연주가 끝나기 전에 닿으려

반쯤 꿴 신발 바람으로 달린다

무대는 늘 서두른다

곧 떠날 듯한 건들거림으로 서서

거만한 관람료를 받는다

며칠 묵은 그림자들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사과 궤짝이 무대로 올려지고

고무 다라나 플라스틱 바케스가 날아 오른다

박수들은 산처럼 쌓인다

앵콜은 거칠어 때로는 부숴지고 깨지고

항의는 할 수 없다 해도 소용없다

공연은 안타깝게 짧았다

동그랗게 관객을 남기고

높아진 무대는 비칠거리며 떠난다

뒤늦게 뛰쳐 나오는 이들

고함을 질러도

끄집어 낸 내장 되집어넣을 수 밖에 없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무대는 다시 열리지만

따라가기에는 너무 무겁다

막이 내린 삼거리는 텅 비고

내당 시장 쪽 언덕 위에서 연주는 이어진다

 

띠리리리 리리리리리

 

 

 

 

2011.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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