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아버지의 옥상

취몽인 2019. 12. 25. 12:34




아버지의 옥상

 


빈 닭장이 놓인 시멘트 바닥 옥상 마른 이마에서 거친 울대를 거쳐 내려오면 깊은 셋집 둘 움푹한 얼굴 맞은 편은 거만한 마루의 안채 아버지는 높이를 세 놓고 어둠을 끌어 묻은 옥상에서 살았다 한 때 주인이었던 이들은 관성을 이기지 못해 툇마루를 필요로 했다 그들은 툭하면 고기를 구웠고 우리는 시래기국을 끓였다 늘 세들어 사는 하늘이 부러웠다 


퍼올린 산기슭 위로 상추가 배배 자라고 경계 없는 모서리엔 제라늄이 어지러웠다 딱 한 번 병아리가 자라 닭이 된 닭장은 어설픈 비둘기들의 지옥이었다

두꺼비집으로 들어가는 전기를 훔쳐 밝힌 등 몰래 마시던 소주에 취해 기침을 쏟던 깊고 좁은 모퉁이 빈 난간을 짚은 어머니는 몇 번 낙상을 했고 그때마다 문간을 지키던 누렁이는 죽었다 천규덕이 당수를 날리던 밤이 십원에 팔리면서 아버지는 옥상을 내려와 동굴에 칩거했다  


자바라 달린 동남샤프 텔레비젼 뒤에서 한라산은 반토막씩 태워졌다 시간은 자꾸 방안으로 기어들어와 호마이카 장롱속으로 들어갔다 컴컴하게 쌓이던 목숨들을 덮고 쟈르르 번호를 돌려 감추던 두려움들 산기슭이 마르고 제라늄은 붉게 시들었다 고치를 쪼개고 어머니가 옥상을 다시 오르던 날 아버지는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동굴을 나섰다 녹슨 살의 자전거가 언덕을 내려갔고 아버지는 돌아 오지 않았다   


자라면서 옥상은 낮아졌다 동굴에는 새로운 음모들이 세 들었고 밀려 나온 아버지의 심장은 쟈르르 개봉되었다 차곡차곡 쌓인 미루어진 것들 봉인된 두려움들 그 아래 아버지는 웅크리고 있었다 흰 보자기 하나의 해석을 사르고 우리는 옥상을 내려왔다 비둘기 한 마리 닭장에서 나와 저문 하늘로 날아가고 전등에선 훔친 전기가 누렇게 식어갔다 떠나는 날 마당은 유난히 푸석푸석했다 


멀리서 혼자 남은 옥상이 오래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2011. 12. 12 초고/ 2013. 10. 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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