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신진극장

취몽인 2017. 10. 15. 23:01




신진극장

 

 

반고개서 새길시장 못 미친 골목에 들어앉은 신진극장

어릴적엔 영사기사이던 큰 매형덕에 번개아톰이니

월하의 공동묘지를 공짜로 보기도 했었던 내당동

유일의 삼류극장순임이가 사장딸이란 소문이 있었는데

최근에물어보니그건 아니고 그냥 매형처럼 친척집이었

다는데 이러저러 나하고는 연이 얽힌 극장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이었나 집하고는 제법 먼 거리였지만 길

건너 낚시점 딸인 여학생 언저리를 맴도느라 근처

독서실을다녔는데 공부는 뒷전이고 노느라 바빴던

기억이 난다 겨울방학 어느 날 아침나절에 독서실을

나와 극장엘 갔는데 진추하의 원섬머나잇과 이소룡의

당산대형을 동시 상영했던 것 같다.

영화 내용은 뻔한 것이고 극장안의 풍경이 또록하게

남아 있는데 아침이었으니 관객은 우리 포함 여남은 명

정도였었다 스크린과 무대 아래 커다란 톱밥 난로가

쌍석탑처럼 서서 벌겋게 달아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주변을 아무렇게나 둘러서고 앉아서 담배도 피고 술도

마시며 참 남루하지만 또한 정겹게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니 영화는 저 혼자 돌아가고 사람들은 그저 그렇게

극장안에서 겨울을 나고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생신분이라 그 틈에 끼진 못하고 낚시점 여학생과

구석 한 켠에 앉아 진추하와 아비의 사랑 노릇을 부러워

하며 몰래담배도 한 대 폈었다

그 날이 내가 신진극장에서 영화를 본 마지막 기억이다

얼마전 무침회 골목 지나는 길에 본 신진극장은 그 자리에

그 입성 그대로 서있긴 했는데 무슨 이름없는 쇼핑몰로

바뀌어 있었다 그렇게 어린 시절 내게는 특별한 곳이었던

신진극장과의 연은 끝났지만 지금도 몇 년에 한 번쯤은

꿈 속에서 극장앞을 서성이며 동시상영 에로영화 간판을

보거나 오촌 조카 무등 태우고 극장을 호기롭게 드나

들기도 한다

낚시점 딸, 그 여학생 이름은 도무지 생각나지 않지만

신진극장, 그 골목안 커다란 풍경과 기억은 쉬 사라지지

않을 내 유년의 영원한 유산이다

 

2017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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