愛樂園
너를 오래 잊지 못한다
반고개가 슬쩍 고개를 돌린 곳
잔뼈들 빽빽한 벽돌담 너머에 살고있던 검붉은 두려움들
비 오는 날이면 아이들 간을 빼먹기 위해
이구못 근처를 몰래 돌아다닌다는 소문들이 웅크린 곳
완고한 벽 아래로 실뱀 몇 마리가 길을 가로지르던 여름날
주저앉은 시간이 풀풀 날리는 지붕 앞에서 너를 만났다
반고개를 순회하던 안하무인의 神이 강제한 사랑으로
얼굴이 지워진 너는 내 발가락만 바라봤다
표정 없는 이웃들이 저만치 그늘에서 일렁거렸다
정오의 햇빛이 자꾸만 너를 미간 속으로 밀어넣었다
오른 손을 내밀었다 왼 손이 나왔다
한 뭉치의 손
나도 왼 손을 내밀었다 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 다행인 왼 손
부정교합의 인사 사이로 마디 잘린 지렁이들이 툭툭 떨어졌다
목사님만 멀쩡한 박수를 치며 하하하 증발했다
같이 밥을 먹고 공을 차는 동안 소문은 서쪽으로 흘러가 버렸다
지워진 얼굴에도 웃음은 있었다 땀도 흘렀다
깊은 흙담 속에서 나온 이들도
헤어지는 악수는 매끈하고 따뜻했다
맹세코 긴 이별을 아쉬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 밤
집에 와서 손을 씻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울면서 오래오래 낮을 지웠다
피 맺힌 손등 위로 짓이겨진 지렁이들이 꿈틀댔다
나의 사랑은 도무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민망한 神은 식은 땀을 흘렸다
그 날을 오래 잊지 못한다
2013. 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