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과 짬뽕 사이
2011. 12. 15
얼마전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대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KTX는 빨라서 좋은 만큼 빨라서 아쉬운 점도 많은 것 같았다. 모름지기 기차 여행이란 조용히 덜커덩 거리는
운동감을 뱃 속으로 느끼며 한 세시간쯤은 굴러가야 맛이 있는 법인데 한 시간 반 남짓한 시간은 익숙해지자
곧 내려야하는 아쉬움으로 끝나버리는 것 같았다.
기차가 광명역을 스르르 미끌어지며 출발하자 한 가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느슨한 덜컹거림 속에서 들고 온
칸트를 느긋하게 읽을 것인가, 아니면 오랜 만에 창밖으로 고즈넉하게 흐르는 초겨울의 풍경을 완상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고민이었다. 둘 다 놓치기 싫은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 될 것 같은데..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 고민하는 오래된 습관처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결국 우선은 책을 읽기로 했다. 창밖은 막 광명을 지나 수원을 향하고 있으니 아직은 도시의 냄새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익숙한 풍경이었고 당장 푸근함으로 다가오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칸트가 말하는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차이는 쉬운 듯, 부족한 듯 머리 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서양철학사의 코페르니쿠스적
전기를 이루었다는 칸트가 생각하는 미와 예술에 대한 단상. 아름다움은 기차 안에 있었고 숭고는 창밖 서늘한 민둥산에
깃드는 것 같았다.
몇 페이지나 읽었을까. 기차는 추풍령을 넘고 있는 것 같았다. 거꾸로 달리는 차창 밖으로 산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있었다
가파를 고개를 돌아 넘으니 멀리서 산은 고개를 쑥 내밀었다가 또 옆으로 슬쩍 비껴 내려 앉기도 하고 있었다. 산이 나를
바라보고 기웃거리며 따라오는 시간, 산이 살아있다는, 우리를 관조하고 있다는 느낌, 내가 세상 속에서 잘난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흐뭇하게 솟았다.
어느새 나는 짜장면 그릇을 치우고 짬뽕을 탐식하고 있었다.
역시 짜장면도 짬뽕도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한 쪽도 포기하기에는 너무 큰 행복,
그것들이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 흥근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기차는 벌써 목적지를 예고하고 있다.
짜장면과 짬뽕은 맛있지만 너무 빨리 먹게 된다. KTX도 그런 것 같다. 느린 기차를 타야겠다.
'이야기舍廊 > 하루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정일 사망 - 너무 먼 공포 (0) | 2011.12.19 |
---|---|
대림절, 잃어버린 것을 위하여 (0) | 2011.12.18 |
신춘문예 (0) | 2011.12.14 |
안양에 살다 (0) | 2011.11.15 |
轉進 (0) | 2011.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