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에 살다
2011. 11. 15
태어난 대구를 떠나 서울에 자리를 잡은 지 이십칠년. 이대 앞 염리동, 강동의 고덕동, 사당동을 거쳐 관악산 아래
남현동에서 산 세월만 이십년 남짓.
결국 지난 주에 떠밀리듯 은행잎 길가에 노랗게 쌓인 남현동 언덕을 떠나 안양으로 이사를 했다. 평촌 끄트머리 호계동.
아파트 생활은 고덕 시절 18평 주공아파트에서 살아본 이래 처음이다. 구층 높이에서 잠을 자는 것도 처음이다.
집은 널찍하다. 특히 거실이 시원하다. 발코니도 앞 뒤로 넉넉하고 여기 저기 수납할 곳도 많아 살기엔 더없이 편리하다.
그런데 낯설다. 사무실을 안양으로 출근한 지도 벌써 일년 삼개월이 지났으니 그리 낯선 곳은 아닌데 늘 다녀간다고 생각하던
곳으로 온 식구를 다 끌고와 살게한 현실 탓인 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특히 낯설어 한다. 밀려났다는 느낌, 매일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근을 해야한다는 두려움이 큰 것 같다. 아이들도 내색은 하지 않지만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익숙해질 것이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얼마 동안이나 이 곳에서 살지는 모른다.
내 생각으로는 그냥 이 곳에 눌러 앉아 사는 것도 그리 나빠 보이진 않는데 아내의 열패감이 그걸 용납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기왕에 이사를 했으니 아웃사이더로서 바라 보던 이 곳에 좀 더 깊이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도 이 도시 속에서
엮어질 관계들 사이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내가 안양 사람이 되어야 한다. 지역의 주인으로 행세를
해야만 지역에서 나는 것들을 공유할 수 있으리란 생각. 지극히 계산적이긴 하지만 그 계산이 나를 이 곳으로 이끌었으니
거부할 수도 거부해서도 안되는 현실인 것이다.
새롭게 시작하는 몇 가지. 오래된 자동차 번호판이 바뀌었다. 그간 달고 다니던 서울 넘버가 없어지고 지역 표시가 없는
새 번호판을 달았다. 늙은이에게 부여된 새 이름. 나만큼이나 녀석도 어색하리라. 또 다른 하나, 방치 끝에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이빨 공사를 시작한다. 삭아서 잇몸에 겨우 매달린 윗니들을 떠나보내고 볼트를 박아 이물감 나는 광물질을 이빨 대신 박아 넣어야
한다. 견적이 무려 칠백만원. 그것도 급한 일차 공사에 해당하는 금액이니 오십년 봉사해온 이빨을 소흘히 대한 대가는 일천만원이
되는 것이다. 삭은 이는 안양에 버려질 것이다. 새 이는 안양에서 건설되고... 내년이면 씩씩하게 기계적으로 뭔가를 씹게 되리라.
사무실도 불편한 관계를 정리하고 겸손히 새로 출발할 예정이다.
겸손히, 열심히, 새롭게, 능동적으로....
안양 살이는 이런 몇 가지 키워드로 살아가야 할 걸음이 될 듯하다. 늘 보던 등 뒤의 수리산이 유독 가깝게 느껴진다.
어서 오라고, 잘 왔다고, 같이 살아보자고 어깨를 토닥인다. 달려가는 가을과 함께 안양으로 스며드는 내 후반의 인생.
두려워하지 않고 걸어가야할 일이다.
먼저 이 동네에 살던 친구들이 환영식을 해준다고 한다. 고등학교 친구들. 첫 직장 입사 동기들. 일로 만난 사람들.
그들이 환영하는 것은 나의 패배일까? 아니면 한 줄 더 엮어지는 초라한 외연일까? 그도 아니면 막연한 의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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