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널 탓할 마음은 없다 가난이란 그런 것이다 뒤주 하나에 목줄을 함께 담그면 네 숟가
락은 언제나 내 것보다 크다 덜 주린 자가 한 술 덜 먹고 자리를 일어나는 것이 마지막
미덕 바닥이 보이면 바닥 아래 속도 끄집어 올려진다 밥 한 술에 건더기 두 번 건지다
미움을 받았던 친구가 있었다 미안을 모르는 놈이라고 했던가 통일전선전술처럼쫓아
내고 이제 한 두달이나 지났나 나 몰래 밥을 퍼 먹고 나서 나만 먼저 밥을 좀 먹겠노라
말하는 너를 보며 눈물이 난다 미안은 너도 떠났다 아니면 너 몰래 내가 어느 저녁에 주
먹밥 한 덩이를 훔쳤다고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그러면 미안은 그 자리에 있다 밥통은
이제 비었고 먼저 퍼 먹어 나은 넌 현명하다 N분의 1로 허기를 나누는 건 가난에게 미안
한 일이다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서로를 바로보며 입 꾹 닫은채 앞선 구걸을 독촉해
야할까 몰래 나가 혼자 하는 편이 나을까 빈 속은 그저 각자의 것 마지막 뒤주 바닥을
쓸어낸 넌 아무 말이 없다 빈 독처럼 웅크리고 난로불을 쬐고 있다 다 비었으니 미안할
일도 없다 그냥 편하게 있어라 배고픈 친구 추운 오후는 유난히 느리니 혹시 아니누가
소주 한 잔 산다 눈발 같은 기별을 줄지
2012. 1.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