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人通信
굴전 부침내 번들한 피맛골 즈음에
능곡 토굴처럼 깊은 소굴이 있었다
저녁해가 완강한 교보문고 지하로 내려가고
종로 가득 건강한 퇴근들이 쏟아져 나오면
철문을 젖히고 들어서는 낯익은 얼굴들
시작은 늘 마른 멸치에 맥주 몇 병 그리고 따로
문 바깥 일차 끝난 족발집이 걸죽해질 무렵
남루한 이들은 기웃거리며 나타났다
술 취한 중, 따라지 문화부 기자, 팔 없는 화가
술값은 노상 우리가 내지만 주인은 그들
나중에 시인이 됐다는 누님은 마냥 신나고
한 상 한 짓거리가 되어 취할 즈음이면
피 판 돈으로 피같이 한 잔한 노가다도 오고
비릿한 그 양반 일갈에 詩는 차곡 접혔다
먼저가 나가면 나중이 차지하고
밤은 늘 빙글빙글 돌며 오래 취했다
몇몇은 낮에 사무실로 돈을 꾸러 오기도 하고
매혈의 노가다는 잘 나가는 시인이 되어
원고료로 한 판 걸지게 쏜 후엔 나타나지 않았다
찾는 이가 많아지자 누님은 큰 골목으로 나서
소굴은 이층짜리 제대로 주점이 되고
안주가 늘어나더니 아들이 사장이 됐다
땡중은 매 맞고 사라지고 따라지 기자는 길 건너 가고
우리도 하나 둘 어디론가 흩어졌다
며칠 전 찾아 본 피맛골엔 흔적도 다 떠나고
사람 없는 詩 혼자 텅 빈 길에서 바람과 통신하고 있었다
2012. 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