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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通信

취몽인 2012. 1. 11. 12:11

 

 

 

 

詩人通信

 

 

 

 

굴전 부침내 번들한 피맛골 즈음에

능곡 토굴처럼 깊은 소굴이 있었다

저녁해가 완강한 교보문고 지하로 내려가고

종로 가득 건강한 퇴근들이 쏟아져 나오면

철문을 젖히고 들어서는 낯익은 얼굴들

시작은 늘 마른 멸치에 맥주 몇 병 그리고 따로

문 바깥 일차 끝난 족발집이 걸죽해질 무렵

남루한 이들은 기웃거리며 나타났다

술 취한 중, 따라지 문화부 기자, 팔 없는 화가

술값은 노상 우리가 내지만 주인은 그들

나중에 시인이 됐다는 누님은 마냥 신나고

한 상 한 짓거리가 되어 취할 즈음이면

피 판 돈으로 피같이 한 잔한 노가다도 오고

비릿한 그 양반 일갈에 詩는 차곡 접혔다

먼저가 나가면 나중이 차지하고

밤은 늘 빙글빙글 돌며 오래 취했다

몇몇은 낮에 사무실로 돈을 꾸러 오기도 하고

매혈의 노가다는 잘 나가는 시인이 되어

원고료로 한 판 걸지게 쏜 후엔 나타나지 않았다

찾는 이가 많아지자 누님은 큰 골목으로 나서

소굴은 이층짜리 제대로 주점이 되고

안주가 늘어나더니 아들이 사장이 됐다

땡중은 매 맞고 사라지고 따라지 기자는 길 건너 가고

우리도 하나 둘 어디론가 흩어졌다

 

며칠 전 찾아 본 피맛골엔 흔적도 다 떠나고

사람 없는 詩 혼자 텅 빈 길에서 바람과 통신하고 있었다

 

 

 

2012.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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