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 생일
이십사년전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었다
며칠째 진통만 거듭하던 아내는
마침 당직 산부인과 의사가 없는 틈에 양수가 터졌다
당황한 간호사와 씨름을 하며 태어난 둘째
눈이 작았고 얼굴은 까무잡잡했었다
구십년은 처참한 시절이었다
두달간의 실직후 낯선 곳으로 다시 출근을 하고
본가에서 쫒겨나 이대앞 단칸방에 세들어 살아도
여전히 빚은 성성하게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그래도 태어날 녀석은 태어나는 법
전날도 아마 술을 마셨을 것이다
회사대신 한양대 병원 고갯마루를 올라
나를 닮은 복없는 녀석을 처음 만났다
산모도 나도 많이 지쳐있었다
반가움보다는 두려움이 먼저 바라보는 상견례란
백일도 돌도 게눈 감추듯 보냈다
첫째때 그렇게 열심히 찍어대던 사진도 없었다
녀석도 서러웠던가보다 얼마나 울어대던지
첫겨울은 몹시 추웠다.
친구들은 나만보면 분유와 기저귀를 사주곤 했었다
늘 미간이 접혀서 자라던 녀석
우윳병을 물지 않으면 절대 잠들지 않던 녀석
한 방향을 잡으면 어떤 장애물에도 직진을 포기하지 않던 녀석
쉬 꽤죄죄해지던 입성에 까맣게 반짝이던 웃음
아빠를 무숴워하던 녀석
세월은 파도처럼 흘러
이젠 대학 졸업을 눈앞에 둔 아가씨가 되었다
짧은 치마에 굽 높은 구두를 신고 곱게 화장도 하는
스물 네살의 꿈을 꾸는 내 딸
미안하고 고마운 둘째 딸의 생일이 가슴 아프다
2013. 5. 2 / 모던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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