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1습작

구멍

취몽인 2019. 12. 25. 11:02




구멍

 

 

 

겨울의 한 귀퉁이가 얇아진다

이마 위로 썰매를 타는 조무래기들

뒷꿈치가 손에 닿을 듯하다

오래 참았던 숨을 내쉬자

살짝 들리는 하늘

살얼음 사이로 기억이 비집고 나온다

뚝방끝 질기게 나부끼는 수양버들 아래 

폐타이어 더머는 어제보다 더 삭았다

작고 동그랗게 입을 열어본다

우르르 턱밑으로 몰려오는 기다림들

채 녹지 못한

지난 가을의 목숨도 고개를 든다

뚝방 위에서 오래 떠나지 못하던 여자를

묵묵히 바라보던 달은 오늘도 왔다

유독 슬픈 인간의 낙과(落果)

껍질의 피를 핥던 피라미들도 아직 녹지 못했지만

천천히 몸을 뒤집어 본다

여전히 꽁꽁 언 하늘 틈

동전만한 구멍 위에서 바라보는 달 한 알

그래 이젠 그만 잊어

뻑뻑하게 눈 깜빡인다

금 간 바람 한 줄기 지나자

눈물 몇 방울 딱딱하게 떨어진다

어깨가 시린 살얼음은

조금 멀어진 달을 밀어내며

다시 동그란 문을 걸어 잠근다

 

 

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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