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1습작

쫓기는 겨울에는

취몽인 2014. 2. 17. 12:39

 

 

 

쫓기는 겨울에는

 

 

 

그럭저럭 겨울은 끝나고 있다

늘 그리운 동해는

산맥을 넘다 하얗게 죽어버렸다는 소문이다

포크레인으로 두터운 동사체를 퍼내며

사람들은 치를 떤다 뭣도 모르면서

어렵사리 미시령을 넘은 바다는 어찌어찌

몇 몇은 날아오르고

남은 몇 몇은 흘러 나를 만나러 올 것이다

너무 오래된 격리를 머금고

 

얼마 전 새로 산 시집이 어디 있는 지 모른다

속 표지에 꺼칠한 넋두리만 적어 놓고

차마 넘기지 못했던 부러움

해체되고 사이를 오가며 의미를 굳이 지운

시인의 나라는 내게서 멀다

그 거리 만큼 바싹바싹 마르는 입술

조금씩 들이키는 짭조름한 흉내 몇 모금은

목을 태워 깊은 물기마저 뽑아낸다

차라리 더 고통스러워지면 좋으련만

 

먼 후배의 시 몇 편을 프린트 한다

행간에 맺힌 서너 밤과 맨질한 테크네

자족하였을까

죽음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젊은 밤에

한풍기와 공터 그리고 마른 골목을 헤매며

굳이 무슨 무게를 싣고자 했을까

자판기 커피는 너무 달고 맛이 똑같지

겨울을 밀며 흘러오고 있을 바다

그 치열한 무게의 맛을 담을 수는 없어

 

가만 있음을 참을 수가 없어

아무 의미도 말할 수 없지만 무작정 떠드는

그런 것도 시가 될 수 있을까

흉내보다는 낫지 않을까

잘 살지 못한 채 살아 있는 일은

더이상 춥지 않아 우습게 된 계절

습설의 동해가 흘러 양평쯤의 소식을 전하는 무렵

놓아버리는 손을 향하여 어정쩡한

얼지도 녹지도 못하는 겨울 그 쫓기는 허기

 

 

 

2014. 2. 17

 

 

  

'詩舍廊 > ~2021습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양평가는 길  (0) 2014.03.01
濕雪  (0) 2014.02.17
침묵  (0) 2014.02.11
짤순이의 사랑법  (0) 2014.01.27
콜 우먼  (0) 2014.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