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 옆에서
장마가 예고된 오후
목적지 없이 집을 나서다
지하철역까지 마을 버스를 타고
지하철은 굳이 타지 않고
아무 버스나 집어 환승
갈 곳도 가고 싶은 곳도 없는 잉여
과천쯤에 내려 벚나무 바람을 쐬다
바삐 달리는 차들과 사람들
방관하는 창가에 단 커피 한 잔 마주하다
오래 있어도 나가랄 사람은 없다
삼천 팔백원에 커피 한 잔
둥근 테이블에 나무의자 셋이면
시간에겐 충분한 지불
남은 담배는 일곱 개비 곧 여섯 개비
넌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고 빨리 피워
여섯 시 약속에는 비가 올 것이다
술 먹지 않기로 한 저녁은 너무 습하겠지
씨를 부지런히 뿌려둬야 결실이 있어요
당신은 너무 게으르고 자존심만 강해
절실하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습니다
바퀴 몇 개 줄 지어 눈 앞을 지나다
보장을 팔고
다가올 겨울의 눈을 팔고
너의 물건을 팔아 드립니다
던져둔 가방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다
두 시 사십 오 분
젊은 친구들의 여유는 투박하다
부숴지듯 웃고 반쯤 욕을 섞어 사랑한다
너 또한 구르다 멈출 것이다
실적을 바라는 사무실로 갈까
더 습한 사우나는 어때
당구장 서점 도서관 그냥 버스 유람
도시의 세 시간은 너무 광활하다
핫팬츠 여학생 허벅지를 훔쳐보다
뒷 편의 할머니가 겹친다
대구와 수원과 인천을 거쳐 역삼으로 올 친구는
다시 대구로 간다 한다
버스 몇 대 승용차 몇 대 사이로 오토바이 한 대
좌우로 구르며 지난다
잠깐 비치는 비는 햇살에 지워졌다
주춤한 구름이 내려다 본다
엇, 창밖의 바람이 둥글게 구른다
처녀 하나 흘깃 보고 둥글게 구른다
강아지를 꾸짖는 막내 목소리가 둥글게 구른다
뒷 자리의 담배연기 내 앞으로 둥글게 구른다
모두가 굴러가는 눈 앞은
온통 바퀴 자국
그 흔적 깊이에 짓이겨지는
오후의 무력 한 모금
2014.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