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작은 설 무렵

취몽인 2015. 2. 18. 22:56

 

 

 

 

작은 설 무렵

 

 

 

설 쇠러 큰집에 가던 우리 집

설은 일주일 전부터 꿈틀됐다

 

엄마와 함께 걸어

새길시장이나 서문시장까지 가

새 옷이나 운동화를 사는 걸로

설레임은 시작되곤 했다

 

동네 공터에 뻥튀기 기계가 돌고

뻥 소리에 튀밥이 쏟아지면

누구나 한 입 미어지게 튀밥을 쓸어담았다

하루 종일 포성은 끊이질 않았다

 

한 켠에선 튀밥을 물엿에 버무려

오꼬시 만드는 줄이 길었다

콩이 덤성 박힌 오꼬시, 깨오꼬시

정신 팔린 사이 소매치기 맞은 엄마도 많았다

 

설 며칠 전에는 청수탕 가는 길 옆

방아간에 떡 뽑으러 가기도 했다

다라이 머리에 이고 한 참 줄서 기다려

김 펄펄 나는 가래떡 뽑아오곤 했었다

 

이북 출신 옆 집 희주네는

손바닥보다 큰 만두를 빚었고

우리 집은 꾸덕꾸덕한 떡을 썰었다

사이사이 조청 찍어 한 볼테기씩 먹어 가며

 

날 밝으면 새 옷에 새 신을 신고

세배하고 세뱃돈 받을 생각에

잠도 잘 오지 않던 그믐 밤

잠들면 눈썹 센다던 우스운 협박도 아련하다

 

사십년도 훌쩍 넘은 오늘 그믐밤

몇 몇 친구들은 부러운 고향으로 가고

정구지 찌짐에 막걸리 한 잔 불콰한데

세뱃돈 받을 나이도 지난 아이들 소리만 시끌하다

 

 

2015. 0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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