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속으로
돌이켜보면,
내 돈이건 남의 돈이건 간에
쓸 수 있는 돈이 많았을 때
나는 퇴행했었다.
그게 내가 가진 남의 돈이었을 때,
퇴행의 여진이 오래 갔을뿐.
반면에 가난했을 때,
절박했을 때를 지나며
지금의 일천한 자각들이 생겼다는 생각도 든다.
자존심의 무의미,
거울 속의 별 볼일 없는 한 남자,
부자가 될 수 없는 팔자 또는 천성,
상선약수 같은 것들.
누군가
'자발적 가난'이란 이야기를 했다.
그는 그가 지키고 싶은 가치를 위해
그 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는
풍요를 거부했는지 모른다.
나는 현재 '부여된 가난' 속에 있다.
아마 특별한 은총(?)이 없는한
이 상태 대로 삶을 끝내거나
좀 더 나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가난을 즐겨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내 정신의 진보가 비롯된
그 진창의 깊이 속에서
오십 년 동안 쌓인
잉여를, 쾌락을, 껄덕댐들을 거듭 버리고
얇고 가볍게 살아볼 일이다.
오후에는
옆구리 비계처럼 붙여놓은
전화번호들부터 좀 지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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