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택詩人

탈욕

취몽인 2018. 5. 15. 14:43

탈욕

 

 

야간근무 연속 팔 일째.

 

꾀가 생겨

집을 나서기가 싫다.

하지만 막상 길을 나서면

시간은 허걱지겁 간다.

새벽 세 시쯤이면

눈도 침침, 머리도 멍해지지만

그것도 한 삼 십분 지나면 괜찮다.

 

퇴근 전 마지막 한 시간,

집중하면 목표에 닿고 놓아버리면 꽝이다.

취객들에게서 놓여나

새벽을 깨우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다.

퇴폐에서 각성으로 넘어가는 느낌.

씩씩이 엄마 말처럼 취객과 출근객이 섞인

새벽은 절망과 희망이 섞인 시간이다.

 

하루에 맑은 정신으로 온전히 갖는 두 시간.

대책없는 노후를 위한 준비라고는 하나

실효성이 의심스러웠던 공부를 놓자

스트레스 없는 두 시간이 오롯이 남는다.

 

강아지 산책도 시키고,

석 달 곁에 방치됐던 책도 다시 읽고,

시집도 다시 뒤적인다.

 

불안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피폐를 생산한다.

 

불확실을 인정하고, 현재로 감당하기로 한 결정

침대에 누워 옆구리에 강아지 체온을 느끼며

느긋하게 책을 읽는 이 순간의 편안함이면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계획은 내 평생의 업보같은 것이니

곧 또 뭔가를 새롭게 준비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가벼운 일이었음 좋겠다.

 

시집을 내기로 혼자 생각한 시간이

대충 삼 년쯤 남았다.

계획을 이 준비로 대체할 수도 있다.

 

그럼 또 앞날이 나를 압박하겠지만. ㅎㅎ

 

18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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