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무력한 의지

취몽인 2019. 4. 30. 14:26

무력한 의지

 

어제 밤 한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

 

교회에서 만나 근 십 년을 함께 해온

친구다. 나와 같은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나보다 훨씬 심한 장애를 안고 평생을

살아온 친구. 하지만 어느 정상인보다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당당히 세상을

살았다. 역시 몸이 불편한 아내와 함께

어린 두 딸을 키우며 늘 웃던 그 친구.

 

2년전쯤 대장암으로 수술을 받고

계속되는 항암치료로 한 달의 절반을

병원에서 지내면서도 그는 씩씩했다.

반드시 암을 이겨내겠다 의지를 다졌고,

평상시와 다름 없이 모임에 참석하려

애썼다. 경이로울 정도의 정신력이었다.

 

최근 병세가 악화됐단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합병증으로 폐렴이 찾아왔다 했다.

아픈 이들에게 폐렴이란 최후 통첩같은

것이라 들어 걱정이 됐었다.

하지만 주말에 병원을 찾았던 다른 친구가

전한 바에 따르면 그때까지도 자신은 병을

이겨내겠다. 반드시 살겠다고 다짐을 했다 한다.

 

그러던 그가 그예 어제 밤 우리와 입장을

달리했다. 밤운전을 하는 중에 부고가

문자로 날아들었다. 허망했다.

 

모진 삶을 어떻게든 살아내겠다 싸워 온

친구. 하지만 정신만으로 육신의 몰락을

막을 수는 없는 일인가보다. 그게 인간이다.

영혼이 성성해도 몸뚱이를 마냥 지킬 수는

없는, 이놈의 유한 생명체.

 

그는 눈을 감았고 내일이면 땅에 묻힌다.

그러면 그렇게 살고자 의지를 불태웠던

그의 눈빛과 정신은, 굳은 말들은, 아이들을

사랑하던 마음은 어디로 갈 것인가?

도무지 썩지 않을 의지는 어디에서 떠난

몸을 바라볼 것인가?

 

그의 모습을 본지 반년 정도가 지났다.

이제는 영정으로만 볼 수 있다.

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걸 좋아

했었는데.. 그게 외로움 때문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는데. 더 많이 이야기를 들어

주지 못한 것이 아쉽고 미안하다.

 

꽃잎들이 한바탕 지고 푸른 잎들이 한창이다.

육신이 저문 친구여, 어디 계시던 당신의

그 맑고 단단한 정신을 무성하게 피우시게.

우리도 곧 그 길을 가지 않겠나. 그때 먼 저

지나온 그 길 좀 이야기 해주시게나.

 

잘가시게 내 단단한 친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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