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출근

취몽인 2019. 10. 18. 16:29



출근



  행복. 이라 중얼대고 문을 나섭니다 내비게이션이 느긋해지면 93.1을 들으며 갑니다

긴 신호에 걸리면 핸드폰 속 김영승의 반성을 한 쪽 읽습니다 그는 오래 반성했고 나는

조금씩 반성합니다 발산역에서 한 여자를 태우고 한강을 건넙니다 수색 가는 길은 오

늘도 꼬리가 깁니다 증산에서 또 한 여자를 태웁니다 이쯤에서 쓴 커피를 한 잔 마십니

다 월드컵경기장을 지나 자유로를 탑니다 오른쪽에서 쓰레기 냄새가 납니다 돌아보면

난지공원 꼭대기의 바람개비가 천천히 돕니다 행주산성 참게매운탕집을 지나면서부터

는 소풍입니다 바다를 향해 흐르는 한강은 도무지 나를 따를 수 없습니다 하늬바람이

늘 불지만 강을 붙들뿐 나를 붙들 순 없습니다 미련스런 능소화 몇 어쩔수 없이 떨어집

니다 입술 부르튼 플라타너스가 큰 손으로 덮습니다 요즘은 바람처럼 새떼가 쏟아지기

도 합니다 철새가 오면 가을인가요 겨울인가요 단풍도 안들었으니 가을이 맞겠죠 강

건너는 김포땅입니다 점점 옅어지며 뒤로 쌓이는 능선들이 편안합니다 물비늘이 튀고

구름은 뿔뿔이 흩어져 맥없습니다 문발 못닿아 출판단지 지날 때쯤이면 라디오 디제이

가 바뀝니다 음악도 알레그로에서 아다지오로 풋풋에서 푸근으로 바뀝니다 이 순간이

참 좋습니다 현실은 시나브로 다가오는데 음악은 거꾸로 흐르는 듯해서 소풍이다 소풍

이다 속삭입니다 거의 다왔습니다 통일전망대가 보이고 어설픈 안개 뒤로 북녘 마을이

가물거립니다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자유를 빠져나갑니다 빠르게 왼쪽 건너에 낮은 지붕

여럿 옹기종기 해바라기 중입니다 바로 저깁니다 변주되는 캐논에 실려 주차를 마치면

두 여자는 먼저 내리고 나는 천천히 먼 강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피웁니다 그리고

패인 옹이같은 계단을 올라갈 겁니다 소풍길을 달려왔으니 이제부터 소풍을 즐겨야합

니다 저 강이 붉어터지는 시간까지는요

 

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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