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집. 글.
새해에는 이 세 가지에 집중하는 단순한 삶을 살고자 한다.
택시일을 시작하면서 본의 아니게 이미 그렇게 살고 있지만
이왕이면 주어진 환경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한다.
짧지 않은 세월, 되지도 않을 번다한 일들에 오지랍 넓게
변죽을 울리고 살았다. 그 결과로 남은 것은 습자지처럼
얇디얇으면서 면적만 차지하는 관계들과 그에 따른 체면치레
따위들뿐. 한 일 년, 관계들로부터 고립된 채 지내보니 그도
그리 나쁘진 않았다.
인생에도 유지 비용이라는 게 있을 것 같다. 노후의 건강 관리,
의식주의 안정화 같은 것에 쓰이는 비용들이 대표적이지싶다.
벌이는 충분치 않고 모아 둔 것은 별로 없으니 유지비용을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단순화는 유용한 방법이다.
'일'
선택의 여지가 내게 거의 없는 '일'은 그저 성실히 할 뿐이다.
즐겁지 않지만 즐거울 이유를 끊임없이 찾으며 해야 한다.
언제까지일 지는 알 수 없으나 생각보다는 오래 해야 할 것 같은
일이니 여러가지 '안전'을 고려한 적정선의 노동 투입과 수입의 함수 관계를 결정해두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집'은..
그동안 나의 게으름으로 인해 박탈 당한 가족들의
행복을 최소한 보전해줘야 할 책임이 크다. 내 힘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냉정히 말해 얼마 남지 않은 나이이니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대단히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저 좀 더 친절해지면 되는 일이다. 내 말이 아니라 집안의 가장 큰 채권자인 아내의 말이니 맞을 것이다. 이미 서른 넘긴 두 딸 앞에 권위 따위는
씨도 안먹히니 자생전략의 차원에서도 필요한 일이다. 친절의 구체적 실천은?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생각보다는 어려운 일이지싶다.
'글'.
책 읽고 시를 비롯한 시덥잖은 글들을 쓰는 일. 그건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돼버렸다. 꼭 해야하는 이유는 없지만 안할 수는 없는 즐거운 짐이 된지 오래다. 다만 어차피 안 할 수는 없는 지경이라면 되먹지 못한 망상이나 집착이라도 버리는 게 중요하다 싶다. 내 재주에 대단한 작가가 되는 일은 어림도 없는 일임을 스스로 잘 안다. 그럼 그 기준에 엄격해져야 한다. 그저 내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하는 큰 즐거움으로 만족해야 한다. 혹시 뭐라도? 아니면 이 걸로 먹고 살 수는 없을까?하는 따위의 헛꿈은 이제 그만 버려야 할 때다.
작년에 백 권 정도의 책을 읽었다. 하는 일이 험해 깊이 있는 책은 못 읽고 거의 시집 정도만 읽었다. 들어가는 것이 없으니 나오는 것도 없어 시다운 시도 거의 못 썼다. 새해에는 하루에 한 시간 책상에 앉아 책을 읽자 생각해본다. 철학과 시론 공부를 다시 시작해볼까 한다. 이런 류의 책은 침대에 누워서 읽기 힘들다. 그래서 한 시간과 책상의 힘을 빌릴까 한다.
이렇게 정리하면 내 인생의 과제 중 하나가 남는다.
'신앙'이다. 그건 그가 나를 더욱 채근할 때까지 보류한다.
좀 천천히 채근해 주셨으면 좋겠다.
19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