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1초 동안의 긴 고백 /하린

취몽인 2019. 5. 10. 12:02

 

주관적 기준으로,

그리고 본인이 펴낸 책에서

스스로 말했다시피

이 시인은

전문가(프로패셔널)인지 모른다.

때문에

비전문가인 나는

이 시집을 읽어내는 일이 힘들다.

시들을 읽는 동안 내내

시인이 이전에 펴낸

시 창작 테크닉들이 머리를 맴돌뿐

그의 긴 고백을 들을 수 없었다.

시는 시인이 쓰는 것이지

전문가가 쓰는 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

감상하는 이의 역량 부족이 제일 크겠지만

시를 읽으며

세상 속에서 시인이 자리잡고 살고자하는

목적성. 포지셔닝 전략 같은 걸 느끼는 건

괴롭고 슬픈 일이다.

시 쓰며 잘 살아내기 위한

시인의 분투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드러난 객관성이

시인의 아름다운 주관성을 가려

나와는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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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성

 

 

 

흔들리는 것 뒤에 흔들리지 않는 게 있다고 한 번 더 믿는다

 

녹슨 못이여, 여행이란 말을 걸어 놓고 패배자를 추궁하지 마라

 

태초에 요일은 나눌 필요가 없었고 숫자는 한 가지 색깔로 한심해졌어야 했는데

 

전국일주 가이드북은 3년 전에 버려야 했었는데

 

벽 대신 내가 두꺼어지고 말았으니

 

패배자의 생각 안에 구멍을 뚫고 창문을 그리지 마라

 

창문이 흔들리는 건 바람 탓이 아니다

 

무모하게 하루 만에 불행해진 광장에 대해

 

삶이 온전히 자기만의 것이라고 중얼거리는 주관성에 대해

 

비난하지 마라, 항상 머뭇거림이 병이다

 

방을 빠져나가는 순간 객관적으로 나는 증명된다

 

어제도 오늘도 나는 '루저'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