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념
레이몬드 카바의 소설 속 리볼버 권총을 겨눈 여자에 대해 읽다가
문득 삼십 년 전쯤 술집에서 선배에게 무차별로 두들겨 맞았던 밤이
떠오른다 내가 무슨 말로 선배를 조롱했고 그는 나를 엄청나게 때렸
는데 나는 점잖게 앉아 그 주먹질을 고스란히 감당했다 입술이 터지
고 눈두덩이가 부어 올랐지만 조금의 대항도 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
다 오히려 더 때려라 아예 날 죽이라고 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정말
죽고싶었던 것이었을까 미스 덴트는 바닥에 엎드린 남자에게 권총을
겨누다 구둣발로 그의 뒷통수를 밟고 나와선 밤 기차를 타고 떠난다
핸드백 속에 리볼러 권총을 넣고서 바닥에 엎드린 남자가 나였다면
나는 아마 그처럼 벌벌 떨거나 목숨을 애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쏘려
면 쏴라 하고 점잖게 앉아 총알을 기다렸을 확률이 아주 높다 삼십 년
전 쏟아지는 주먹질을 받았듯이 왜 그랬을까 왜 그럴까 나는 왜 반항
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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