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구피 가족

취몽인 2019. 11. 21. 12:21

구피 다음 세대

 

작은 어항의 구피들과 함께 산 지가 꽤 됐다.

강아지 팝콘이 우리 집에 온 게 벌써 6년인데 그 전부터 있었으니 7년은 넘었나보다.

 

남보라색, 주홍색 화려한 꼬리를 자랑하던

처음 녀석들이 늙어(?) 죽은 지는 오래고,

새끼를 낳아 한 두 세대를 이었다.

 

금년 초에아내가 색이 고운 다른 녀석 셋을 데려왔는데 이놈들이 어찌나 사나운지 기존의

식구들을 다 물어죽이고 말았다. 다행히 어린 새끼들은 따로 작은 어항에 두어 학살을 모면할 수 있었는데 아마 제 부모들이

살을 띁겨 죽는 모습들을 다 봤을 것이다.

 

그 후 학살범들을 다른 집으로 쫓아보내고 어린 녀석들을 키워 왔는데 그 녀석들이 자라 어제 새끼를 낳았다. 그간 수없이 많은 새끼들을 봐왔으나 이 놈들은 괜히 각별하다.

 

장한 마음에 쉬는 날 아침부터 어항을 씻고 물도 갈아줬는데 어젯밤 아내가 따로 옮겨둔 새끼 말고 한 마리가 어른들 틈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걸 발견했다. 잽싸게 제 형제들이 있는 작은 컵으로 옮겼는데 물갈이 끝나고 보니 한 마리가 없다. 분명 처음 두 마리에 새로 한 녀석을 넣었으니 세 마리라야 되는데.. 난감했다. 옮기는 새 워낙 작아 어디 떨어졌나? 싱크대며 여기저기 암만 찾아도 없었다.

 

몹시 미안했다. 아무리 작아도 생명인데,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말라 죽었거나 험한 하수구에 휩쓸려 죽었겠거니 생각하니 그놈 부모들에게도 면목이 없고 새까만 두눈에게도 미안하고..

 

대충 집 청소를 마치고 다시 어항을 들여다보며 새끼를 세어보니 엇! 세 마리!

분명 두 마리뿐이었는데.. 그 좁은 유리컵 어디에 숨어 내 눈에 보이지 않았는지.

 

큰 어항의 부모들에게 '봐, 내가 안그랬지' 한 마디 던지고 돌아서는데 괜히 웃음이 난다.

오늘 하루치 나의 보람은 이걸로 족하다.

 

짜슥이, 사람 놀라게 하고 그래..

 

191121

'이야기舍廊 >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상  (0) 2019.12.06
좀 이른 돌아보기 191127  (0) 2019.11.27
출근  (0) 2019.10.18
아재에게  (0) 2019.09.30
무력한 의지  (0) 2019.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