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를 기다리며
해 가기 전에 회색 칠갑이 된 검은 차 세수 한번 시켜주려고 며칠 전부터 마음 먹었다.
사람 마음이 다 비슷한지 세차장마다 허리춤에 수건 꿴 차들이 줄을 섰다. 금촌까지 나왔으니 다시 훗날을 기약하고 돌아가기는 억울해서 꽁무니에 줄을 세워두고 근처 카페를 찾아 들어왔다.
벽에 키타가 여러 대 걸려있는 카페에는 재즈피아노 소리와 악보를 보며 소리 없이 전자키타를 퉁기는 주인만 있다. 둘러보니 유리창에 음악놀이터라 써놓았다. 주인이 음악을, 키타를 좋아하는 분인 것 같다.
나도 한때 키타를 뚱땅거렸던 시절이 있었다. 오래 묵은 교회 오빠였으니 당연히 장착해야하는 재주였지만 왼손 약지가 잘려 코드를 잡는 게 한계가 있었다. 스물 일곱쯤 그만 뒀던것 같다. 로망스는 결국 뜯어보지도 못하고. 그걸로 악기와의 인연은 영 멀어졌다.
쓴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조정권시인의
시집을 다시 읽어본다. 얌전하게. 시인은 시만 깊은게 아니라 음악과 미술에도 깊은 내공을 드러내고 있다. 미술평론도 했다 하니 취미 수준은 넘는, 거의 시 세계와 버금 가는 또 다른 예술 세계를 일구었다 할 수 있겠다.
한 편 한 편 또박또박 읽어본다. 시간은 아직도 많이 남았다. 이런 곳, 이런 시간 속에 머무를 수 있음에 감사하면서.. 19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