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숙제가 있었다.
아내와 같이 영화 한 편 보기.
그리고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보기.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본 건 한 칠 년 전.
가장 최근에 영화를 본 건 한 오 년 전.
워낙 영화를 잘보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 그 두 시간 남짓 나는 나를 잃는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온 몸과 마음이 소진된 느낌이 든다.
그 피폐해지는 몰입이 싫어 영화를 피한다.
출근이 취소되고 여분으로 하루가 주어진 휴일.
오래 묵은 두 가지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웠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봤다.
지루한 남자 제레미 아이언스가
비 쏟아지는 어느 날 닥친 운명을 얼결에 추적해가는,
작은 책 속에 담긴 열정적인 인생들의 이야기.
그 속에는 야망, 질투, 사랑, 정의, 혁명, 통속 등이
각자 인생들 몫의 역사속에서 엮여 있다.
원래 젊은 날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의 몫이었던
책 속의 멋있는 남자 아마데우는
어쩌면 이 시대 강남좌파인지도 모르겠다.
그 무엇이든(?) 많이 가진 그를 중심으로
영화 속 세상과 인물들이 설정된 점은 다소 불만스럽지만
그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루함과 열정.
책 한 권이라는 액자.
베른과 리스본을 잇는 야간열차.
이념적 가치를 무색하게 하는 사랑과 질투. 현실. 인연
기대했던 만큼 가슴을 흔드는 영화가 아닌 탓도 있지만
영화를 다 보고도 나는 피폐해지지 않았다.
그새 내가 늙었거나 지루해 진 덕도 있을 것이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오직 콤비 자켓 한 벌로
영화 한 편을 다 찍었다.
그리고 황인숙의 시집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영화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내는 무감각하다.
칠 년만에 같이 영화를 봤는데.
내가 지루해 진 탓일 것이다.
다행이다.
'이야기舍廊 > 詩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현대문학 2월호 (0) | 2020.02.01 |
---|---|
깨끗한 나라 /이성부 (0) | 2020.01.29 |
새의 얼굴 /윤제림 (0) | 2020.01.07 |
황금나무 아래서 / 권혁웅 (0) | 2020.01.07 |
한국시조문학 제 16호 (0) | 2020.01.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