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리스본행 야간열차

취몽인 2020. 1. 19. 16:16

 

오래된 숙제가 있었다.

 

아내와 같이 영화 한 편 보기.

그리고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리스본행 야간열차 보기.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본 건 한 칠 년 전.

가장 최근에 영화를 본 건 한 오 년 전.

 

워낙 영화를 잘보지 않는다.

영화를 보면 그 두 시간 남짓 나는 나를 잃는다.

영화가 끝나고 나면 온 몸과 마음이 소진된 느낌이 든다.

그 피폐해지는 몰입이 싫어 영화를 피한다.

 

출근이 취소되고 여분으로 하루가 주어진 휴일.

오래 묵은 두 가지 숙제를 한꺼번에 해치웠다.

 

아내와 함께 영화를,

리스본행 야간열차를 봤다.

 

지루한 남자 제레미 아이언스가

비 쏟아지는 어느 날 닥친 운명을 얼결에 추적해가는,

작은 책 속에 담긴 열정적인 인생들의 이야기.

그 속에는 야망, 질투, 사랑, 정의, 혁명, 통속 등이

각자 인생들 몫의 역사속에서 엮여 있다.

원래 젊은 날 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의 몫이었던

책 속의 멋있는 남자 아마데우는

어쩌면 이 시대 강남좌파인지도 모르겠다.

그 무엇이든(?) 많이 가진 그를 중심으로

영화 속 세상과 인물들이 설정된 점은 다소 불만스럽지만

그 또한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지루함과 열정.

책 한 권이라는 액자.

베른과 리스본을 잇는 야간열차.

이념적 가치를 무색하게 하는 사랑과 질투. 현실. 인연

 

기대했던 만큼 가슴을 흔드는 영화가 아닌 탓도 있지만

영화를 다 보고도 나는 피폐해지지 않았다.

그새 내가 늙었거나 지루해 진 덕도 있을 것이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오직 콤비 자켓 한 벌로

영화 한 편을 다 찍었다.

그리고 황인숙의 시집 리스본행 야간열차와

영화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아내는 무감각하다.

칠 년만에 같이 영화를 봤는데.

 

내가 지루해 진 탓일 것이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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