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벨리

취몽인 2020. 3. 20. 14:01

 

'우리는 과정이자, 사건들이며, 구성물이고 공간과 시간 안에서 제한적이다. 그런데 우리가 개별적인 실체가 아니라면, 우리의 정체성과 유일성의 기반은 무엇일까? 무엇이 내가 김재덕이게 하고, 나의 분노와 꿈과 마찬가지로 내 머리카락과 내 손톱, 내 발이 나의 일부라고 느끼게 하고, 생각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인지하는 어제의 김재덕과 내일의 김재덕이 나 자신이라 느끼게 하는 걸까?'

 

딸이 나름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덕에 가끔씩 얻어걸려 읽는 책들이 있다. 그 친구는 소설을 많이 읽는 편인데 한동안 소설을 읽지 않던 나도 딸의 책장에 꽂힌 레이몬드 카바나 하인리히 뵐 같은 비교적 최근의 소설과 안톤 체홉 같은 고전 단편도 덕분에 읽기도 했다.

 

어릴 땐 내가 사다준 책들이나 내 책장의 책들을 읽던 딸들이 이제 어른이 되어 자기들만의 독서 패턴을 만들어 책을 읽고 그 뒤를 따라 그들이 읽은 책을 내가 읽게 되는 일은 즐겁다. 피차 별로 많은 말을 나누진 않지만(입 다물고 사는 내 탓이 크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같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소통은 이루어진다 싶다.

 

거실 소파 위에 던져진 작은 책이 눈에 들어와 읽던 책을 잠시 밀어두고 먼저 읽었다. 물리학 에세이다. '카를로 로벨리' 나는 처음 접하는 저자인데 상당히 저명한 학자로 소개되어있다.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좁은 폭이라니..)

 

시간이 없는 우주. 저자는 물리학 이론에 입각해서 시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하고 실증한다. 과거, 현재, 미래로 연결되는 선형적 시간은 사실상 인간이 만든 관념이 사실 시간은 단절된 점으로 이루져있다는 난감한 주장. 익숙한 것이 송두리째 뒤집히면 서있는 현실은 곧 어지러워진다.

 

하지만 어쩌랴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다.'라는 명제가 유구한 철학의 유일한 진리이고, 학습되고 복제된 관념과 세상을 넘어 실재의 목소리를 찾아 세상에 다시 들려주는 일이 詩의 사명일진데 주어진 한 평생 동안 기존의 체계가 내게 부여해 놓은 것들을 되짚어보고 다시 생각해보다 가는 수 밖에.

 

딸이 나를 앞지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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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위에서는 산 아래에서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시간은 모든 곳에서 다르게 흐른다. 절대적 시간은 없다. 모든 시간은 상대적 시간이다.

- 아인쉬타인의 일반상대성원리는 이것을 말한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 이상을 볼 줄 아는 詩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 수도 있다.

 

'사물들'은 '개념들'처럼 감각적인 입력 정보의 반복된 패턴과 이에 대한 연속적인 정교화 작업이 만들어낸 산물, 곧 신경 동역학계의 고정점이다. '사물들'은 세상의 양상들의 결합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이 결합은 세상의 반복적인 구조와 상호 작용하는 우리와의 연관성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는 이야기다. 우리 눈 뒤쪽에 있는 복잡하기 짝이없는 20센티미터 영역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다. 또한 우리는 線이다. 이 혼란스럽고 거대한 우주의 조금 특별한 모퉁이에서 세상의 일들이 뒤섞이면서 남긴 흔적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예견하고 엔트로피를 성장시키도록 맞춰진 그 흔적들이 만들어낸 선들이다.

이 공간, 즉 앞날을 예측하려는 우리의 연속적인 과정과 결합된 기억이 시간을 시간으로, 우리를 우리로 느끼게 하는 원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