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책과 문화 읽기

꼼짝도 하기 싫은 사람들을 위한 요가 /제프 다이어

취몽인 2020. 4. 29. 13:26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의 저자

제프 다이어의 논픽션 여행이야기.

 

로마, 리비아의 렙스티, 암스테르담, 캄보디아, 마이애미 사우스비치, 제프 다이어는 누군가와 함께 또는 혼자 어딘가를 다닌다.어떤 곳에선 한 동안 지내기도 하고 어떤 곳은 스치듯 지나친다. 마흔을 넘긴 사내는 그 곳을 느끼고 그 곳들 속에서 자기를 놓아버리기도 한다. 늘 마리화나나 커피,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한다.

그 시간을 글로 쓴다. 순간이기도 하고 대화이기도 한 그의 글은되는 대로 흐르는 느낌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쩌면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일은 아닌듯 싶다. 물론 하루키가 애정할 정도의 문장과 스토리를 쓰는 작가의 글을 읽고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무모한 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을 전달하겠다. 독자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일으키겠다는 생각은 적어도 이 책을 쓰는 동안 저자가 하지 않았으리라 짐작한다. 살아 있는 순간, 어떤 장소 시간 속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순간의 의미를 기록해 놓은 이야기들에서 어떤 느낌을 얻고 몇 몇 통찰에 대해 좀 더 많이 생각하게된다. 이 책은 여행을 기록한 논픽션이다. 그것이 픽션이건 논픽션이건 경계의 의미는 없다. 오히려 논픽션에서 픽션이상의 의미를 얻을 수 있다면 굳이 픽션을 쓸 이유가 뭘까.

 

글의 재미라는 것이 형식이라는 틀에서 벗어난 지는 한참 됐다.

주절주절 말을 널어 놓는 것 자체도 형식이다. 문제는 느낌이다.

대단한 내용이 없어도 특별한 느낌으로 남는 문장들. 그것은 하루키에게도 있다. 하루키는 제프다이어에게서 느꼈을 것이고..

 

이렇게 글을 쓴다면 작가라는 직업도 꽤 즐거울 수 있을 듯 싶다.

물론 이 하수가 보고 느끼는 건 신뢰할 수 없는 준거일터지만 어쨌던 그렇다.

 

책 뒤에 역자가 남겨놓은 말을 옮김으로 다소(?) 소흘히 한 책의 내용 소개를 대신 한다. 역자 역시 나보다는 훌륭하다. 내가 뭐라 말하지 못한 공감의 부분을 정확히 정리해 뒀다. 그래 바로 이런 거였다.

 

'청년기의 삶이 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정해놓고 그것을 이룬 나의 모습을 좇아 생활을 계획하는 삶이라면, 제프 다이어가 제안하는 '폐허'를 경험한 후의 삶은 그런 꿈 없이 그저 순간순간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을 가능한 한 지켜나가는 삶일 것이다. '

 

'베니스의 제프, 바라나시에서 죽다.' 를 읽어봐야겠다.

내 느낌이 어느 정도 맞는지..

나의 폐허는 어떤 구역을 원하는지.

 

 

'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지만 어디로?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은 로마였고, 이미 거기에 와있었다.'

 

'어떤 장소들은 지구상에 잠시 머물러 있는 것처럼만 보이는데, 이곳 렙티스도 마찬가지였다.그곳은 내 발로 들어간 어떤 장소가 아니라, 과거의 꿈의 공간이었다. 나는 '구역' 안에 있었던 것이다. '구역' 안에 있을 때는 다른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다. 구역이 아닌 곳에 있을 때는 늘 어딘가 다른 곳, '구역'에 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