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에 없는 말을 찾으려고 허리까지 다녀왔다
하늘에 다녀왔는데
하늘은 하늘에서도 하늘이었어요
마음속에 손을 넣었는데
아무 말도 잡히지 않았어요
먼지도 없었어요
마음이 두 개이고
그것이 짝짝이라면 좋겠어요
그중 덜 상한 마음을 고르게요
덜 상한 걸 고르면
덜 속상할 테니깐요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요,
가로등 불빛 좀 밟다가 왔어요
불빛 아래서
마음에 없는 말을 찾으려고 허리까지 뒤졌는데
단어는 없고 문장은 없고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삶만 있었어요
한 삼 개월
실눈만 뜨고 살 테니
보여주지 못하는
이것
그가 채갔으면 좋겠어요
-------------------------------
시집 발문을 쓴 이가 시인의 詩를 명도 明度가 높다 말했다. 詩들을 읽는 내내 이 느낌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 한 마디를 찾았는데 딱 맞는 말이다.
맑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 젊은 시인이 어떻게 이런 목소리를 가지고 있을까. 부럽다.
시인은 잘 웃는다고 한다. 그 웃음은 오히려 밝지 않다. 쓸쓸하게 웃으면서 마음을 밝히는 재주라니..
사랑도 있다. 굳이 숨기지도 않는다. 사랑 때문에 울기도 한다. 그러나 드러나는 건 바람같은 웃음이다.
제목만 보고도 읽고싶던 시집이었다. 모든 詩의 제목만 모아도 詩가 될 것 같은 시집이다.
제주에 살면 이런 詩 쓸 수 있나? ㅎㅎ
- 2020. 문학동네 시인선
'이야기舍廊 > 詩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운 바다 성산포 / 이생진 (0) | 2020.06.10 |
---|---|
이 가지에서 저 그늘로 /김명인 (0) | 2020.06.04 |
현대문학 6월호 (0) | 2020.06.02 |
불화하는 말들 /이성복 (0) | 2020.05.28 |
오늘의 냄새 / 이병철 (0) | 2020.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