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하루 에세이

180317

취몽인 2020. 8. 24. 10:15
이유도 잘 모르면서 미안하다
그런 꼴이 싫어 화를 냈다.
나도 그 따위 내 모습을 싫어한다

띄엄띄엄 당신이 하는 말을 생각하면

요즈음이 당신에겐 어려운 시절
같이 만든 세월이지만
당신 혼자에게 남은 흉터 같은 것
그런 줄 잘 몰랐다

이런 말도 당신한테는 잘난 적이겠지

나는 내가 싫다
왜 여기 있는지, 왜 이 꼴로 있는지
나 혼자 이 따위로 사는 지
왜 가족까지 괴롭게 하는 지
더 잘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그럴 수도 있었는데
나는 지금 왜 여기 있는 지

내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힘 들었을 젊은 날 당신
그리고 삼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꿈 속을 사는 남편을 보는 당신

아직 완전히
나는 꿈을 벗어나지 못한 가장이고
당신 남편이다
그건 죽을 때까지 힘들지 않을까
미안한 일이다

사랑을 기본으로 한
배려, 친절, 따뜻함, 깊은 미소..
당신이 바라는 것들..
나도 좋아하는 것들..
사람이면 다 좋아하는 것들..

근데 그게 왜 잘 안될까
특히 당신이 보기에
당신한테는 절대 안될까
1984년
그게 잘못된 만남이라서

이십 대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삼십 대, 그런 생각 가끔 했었다
사십 이후 그건 내 운명이었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지금 우리
쉰도 후반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어른이 됐다
그렇게 키우려고 우리는 애썼다
그럼 됐다 생각한다

딸이 가끔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상상도 못한 일이다
하지만 그게 오늘이다
그래서 나는 더 정신차려야 한다
그건 잘못된 상황이다

나는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한 집안의 가장이다
더 늙어 대책 없을 때까지
나는 반듯해야 한다
아직은 그래야 한다

내 평생 처음으로
술집에서 혼자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를 시켰다
나도 그 쯤은 할 수 있다 싶어서..
혼자 다 먹을 것이다

내 주정이
당신한테는 또 속상한 일일 수 있다
근데
지금
나는 그저 이 말 밖에 못하겠다

미안하다

180317

'이야기舍廊 > 하루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유산  (0) 2020.10.03
집행유예의 시간  (0) 2020.09.30
끄트머리 증후군  (0) 2020.08.17
답답한 시간  (0) 2020.08.09
공명을 좇아서  (0) 2020.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