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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유예의 시간
9/1
오후 1시.
한 달의 시간. 권고사직에 따른 1개월 유급휴가의 첫날. 미리 세워둔 시간 계획표에 따라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 마음이 거부하는 운동, 몸을 끌고 겨우 하는 척만. 김종철선생의 책 60쪽, 아폴리네르의 두 편을 황현산선생을 따라 읽었다. 詩의 길을 조금 배운듯. 순서를 바꿔 오후에 볼 영화를 오전에 미리 봤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그래비티. 라면에 밥 말아먹고, 세탁기 빨래 돌려 널고.
동생 생일. 손 다친 어머니 안부전화. 온 식구가 아프다. 하루도 아프단 소리 안 듣는 날이 없다. 마음이 아프다. 일 주일은 이렇게 은둔하기로.. 페북도 안본다.
9/2
오전 11시.
책을 읽고. 내 글의 방향성에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곧 그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회의에 빠진다. 고립은 늘 회의에 의해 휘둘린다.
잠깐 나갔다 올까 말까 또 회의한다. 강아지는 뭐 달라고 조르고.
오후 2시.
1,200kcal의 비빔면을 퉁퉁 불려 먹고 이창동감독의 詩를 봤다. 고통을 고스란히 볼 수 없어 중간중간 건너뛰며 봤다. 늘 이런 식이다. 끝에 몰리기 전까지는 온전히 대면하지 못하는 生. 그렇게 지나간다.
9/3
오후 3시.
태풍이 지나갔고 남은 바람이 서둘러 우듬지를 쓸며 따라간다. 회사 짤렸다는 말은 못하고 출근길에 들렀노라 하고 어머니 뵙고 왔다. 황해문화 게재지가 왔다. 원고료는 아직. 주태금융공사 수기 공모는 돈 십만원 버는 걸로 끝난 것 같다. 대충 쓰고 돈 벌 생각한 자체가 교만이다. 1등 상금이 백만원인데.. 아깝다.
9/4
오전 10시.
책은 왜 읽는가? 왜 그 일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가? 더 나아지기 위해? 무엇보다? 즐겁지 않으면 하지않는 것이 낫지 않은가? 왜 고통스럽게 현대 양자물리학을 읽고 있는가? 가만 있는 것이 두렵기 때문인가?
9/11
오전 10시.
아폴리네르 시집, 정명환의 인상과 편견, 레이몬드카바의 소설집,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 릴케의 말테의 수기, 류시화가 엮은 시집, 고영민의 시집.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다. 잡다하다. 왜 읽나? 그만 치울까 하는 책도 있다. 다들 정한 시간 장소에서 찔끔찔끔 읽는다.
9월은 이렇게 간다. 한 동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임을 알지만 그 다음에 다가올 불안정에 대한 생각이 자꾸 덜미를 잡아 고스란히 즐기며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
택시 아르바이트는 불가능해졌고, 실업급여 수급도 예상보다 늦을 것 같아 경제적 버티기에 차질이 예상된다. 그 틈을 메꾸어놓지 않으면 남은 9월의 20일이 편찮을 것이다. 내 소심한 성격 탓이다. 예정된 불안을 참지 못하는.. 편의점 알바를 좀 빨리 시작해야할 지 모르겠다.
오후 2시.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무력증에 빠졌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내일 친구와 가기로 한 낚시도 미궁 속이다. 가만 있다 어딘가를 가려 마음먹은 탓일 수도 있다. 일단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9/14
오전 11시.
낚시를 다녀와서 생활의 리듬이 깨졌다. 열 시간 연속 몸을 세우고 있는 일은 이제 힘에 부친다. 밤낚시는 앞으로 불가능이다.
하루 반이 지나고서야 겨우 책상에서 책을 펼쳤다. 공모전 시조를 시작했다. 유치하다. 한 달 남았으니 잘 익혀보자. 새로운 의식이 필요하다.
점심때 후배가 밥 사러 오겠다 한다. 반갑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게으름은 내 천성이다.
9/15
오후 3시
생일날이다. 마이너스대출이 선물처럼 앞당겨 연장됐다. 하늬가 선물한 황금가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녀석은 배가 아파 응급실에 있다 한다. 아내도 아프고, 나를 낳아준 어머니도 아프다. 동생과 내 생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소멸의 속도는 점점 빠르다. 가족이 아픈 것. 쇠잔하는 것. 오리무중 내 앞 일보다 가슴 아프다.
詩는 쓸 수 없는데 고영민 시인의 묘사는 눈부시다.
생일에 맞춰 구약 읽기를 마치고 신약 읽기를 시작했다. 뭔가 자꾸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애쓴다. 의미 없음을 잘 알지만 그렇게라도 앞을 밝히고 싶다.
저녁엔 둘째 남친이 배달시켜준 회로 생일파티를 할 것이다. 축하는 하지만 모두 아플 것이다. 슬픈 축하.
9/20
오후 4시.
하늬가 결국 입원.
사소한 농담이 근원적 신뢰에 대한 의문으로, 그 불신에 대한 좌절로 이어져 사흘의 불편함이 된 며칠.
말 한마디를 더 신중히해야 할 아슬아슬한 부부의 관계.
마지막 월급날이 닷새 남았다. 아르바이트는 소극적으로 알아보는 중. 집행유예는 이제 열흘 남았다. 조금씩 초조해지는 중.
겨우 루틴을 회복한 건 다행. 운동 재개는 내일부터.
9/23
어머니 쓰러짐.
9/24
오후 12시 30분
중환자실 어머니 마지막 면회.
꼭잡는 손. 흔들리는 눈빛
오후 4시
어머니 운명 소식 듣다
9/25
마지막 월급이 들어오다.
빈소에서 오래된 벗들을 슬프게 만났다
9/26
어머니 장례, 화장, 안치
밤늦게까지 울다
9/30
내일이 추석.
집행유예는 끝나고 실업이 시작되는 날.
어머니는 떠나버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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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행유예의 시간
9/1
오후 1시.
한 달의 시간. 권고사직에 따른 1개월 유급휴가의 첫날. 미리 세워둔 시간 계획표에 따라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 마음이 거부하는 운동, 몸을 끌고 겨우 하는 척만. 김종철선생의 책 60쪽, 아폴리네르의 두 편을 황현산선생을 따라 읽었다. 詩의 길을 조금 배운듯. 순서를 바꿔 오후에 볼 영화를 오전에 미리 봤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그래비티. 라면에 밥 말아먹고, 세탁기 빨래 돌려 널고.
동생 생일. 손 다친 어머니 안부전화. 온 식구가 아프다. 하루도 아프단 소리 안 듣는 날이 없다. 마음이 아프다. 일 주일은 이렇게 은둔하기로.. 페북도 안본다.
9/2
오전 11시.
책을 읽고. 내 글의 방향성에 도움을 받는다. 하지만 곧 그게 무슨 의미인가? 하는 회의에 빠진다. 고립은 늘 회의에 의해 휘둘린다.
잠깐 나갔다 올까 말까 또 회의한다. 강아지는 뭐 달라고 조르고.
오후 2시.
1,200kcal의 비빔면을 퉁퉁 불려 먹고 이창동감독의 詩를 봤다. 고통을 고스란히 볼 수 없어 중간중간 건너뛰며 봤다. 늘 이런 식이다. 끝에 몰리기 전까지는 온전히 대면하지 못하는 生. 그렇게 지나간다.
9/3
오후 3시.
태풍이 지나갔고 남은 바람이 서둘러 우듬지를 쓸며 따라간다. 회사 짤렸다는 말은 못하고 출근길에 들렀노라 하고 어머니 뵙고 왔다. 황해문화 게재지가 왔다. 원고료는 아직. 주태금융공사 수기 공모는 돈 십만원 버는 걸로 끝난 것 같다. 대충 쓰고 돈 벌 생각한 자체가 교만이다. 1등 상금이 백만원인데.. 아깝다.
9/4
오전 10시.
책은 왜 읽는가? 왜 그 일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가? 더 나아지기 위해? 무엇보다? 즐겁지 않으면 하지않는 것이 낫지 않은가? 왜 고통스럽게 현대 양자물리학을 읽고 있는가? 가만 있는 것이 두렵기 때문인가?
9/11
오전 10시.
아폴리네르 시집, 정명환의 인상과 편견, 레이몬드카바의 소설집, 지젝의 폭력이란 무엇인가, 릴케의 말테의 수기, 류시화가 엮은 시집, 고영민의 시집. 지금 읽고 있는 책들이다. 잡다하다. 왜 읽나? 그만 치울까 하는 책도 있다. 다들 정한 시간 장소에서 찔끔찔끔 읽는다.
9월은 이렇게 간다. 한 동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임을 알지만 그 다음에 다가올 불안정에 대한 생각이 자꾸 덜미를 잡아 고스란히 즐기며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
택시 아르바이트는 불가능해졌고, 실업급여 수급도 예상보다 늦을 것 같아 경제적 버티기에 차질이 예상된다. 그 틈을 메꾸어놓지 않으면 남은 9월의 20일이 편찮을 것이다. 내 소심한 성격 탓이다. 예정된 불안을 참지 못하는.. 편의점 알바를 좀 빨리 시작해야할 지 모르겠다.
오후 2시.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 무력증에 빠졌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내일 친구와 가기로 한 낚시도 미궁 속이다. 가만 있다 어딘가를 가려 마음먹은 탓일 수도 있다. 일단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9/14
오전 11시.
낚시를 다녀와서 생활의 리듬이 깨졌다. 열 시간 연속 몸을 세우고 있는 일은 이제 힘에 부친다. 밤낚시는 앞으로 불가능이다.
하루 반이 지나고서야 겨우 책상에서 책을 펼쳤다. 공모전 시조를 시작했다. 유치하다. 한 달 남았으니 잘 익혀보자. 새로운 의식이 필요하다.
점심때 후배가 밥 사러 오겠다 한다. 반갑기도 하고 귀찮기도 하다. 게으름은 내 천성이다.
9/15
오후 3시
생일날이다. 마이너스대출이 선물처럼 앞당겨 연장됐다. 하늬가 선물한 황금가지를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녀석은 배가 아파 응급실에 있다 한다. 아내도 아프고, 나를 낳아준 어머니도 아프다. 동생과 내 생일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소멸의 속도는 점점 빠르다. 가족이 아픈 것. 쇠잔하는 것. 오리무중 내 앞 일보다 가슴 아프다.
詩는 쓸 수 없는데 고영민 시인의 묘사는 눈부시다.
생일에 맞춰 구약 읽기를 마치고 신약 읽기를 시작했다. 뭔가 자꾸 새로운 시작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애쓴다. 의미 없음을 잘 알지만 그렇게라도 앞을 밝히고 싶다.
저녁엔 둘째 남친이 배달시켜준 회로 생일파티를 할 것이다. 축하는 하지만 모두 아플 것이다. 슬픈 축하.
9/20
오후 4시.
하늬가 결국 입원.
사소한 농담이 근원적 신뢰에 대한 의문으로, 그 불신에 대한 좌절로 이어져 사흘의 불편함이 된 며칠.
말 한마디를 더 신중히해야 할 아슬아슬한 부부의 관계.
마지막 월급날이 닷새 남았다. 아르바이트는 소극적으로 알아보는 중. 집행유예는 이제 열흘 남았다. 조금씩 초조해지는 중.
겨우 루틴을 회복한 건 다행. 운동 재개는 내일부터.
9/23
어머니 쓰러짐.
9/24
오후 12시 30분
중환자실 어머니 마지막 면회.
꼭잡는 손. 흔들리는 눈빛
오후 4시
어머니 운명 소식 듣다
9/25
마지막 월급이 들어오다.
빈소에서 오래된 벗들을 슬프게 만났다
9/26
어머니 장례, 화장, 안치
밤늦게까지 울다
9/30
내일이 추석.
집행유예는 끝나고 실업이 시작되는 날.
어머니는 떠나버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