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로 다시 출근한지 일 년 하고 3개월이 거진 다됐다. 다음 주면 다시 그만 둔다. 아마 다시는 되돌아올 수 없을 것이다. 내 인생에서 파주에 머무르는 시간이 생길 것을 전혀 에축하지 못했던 것처럼, 또 어떤 일이 있을 지는 모른다. 도합 4년 여의 파주 생활, 자유로 강변을 달리는 출퇴근이 즐거웠고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과 임진강의 만남(交河)이 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무엇보다 다소 여유로운 업무 덕분에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올해만 해도 얼추 160권의 책을 읽을 수 있었는데 그 중 파주 사무실서 읽은 량이 대부분이니 회사 입장에서는 월급을 축내는 불량 직원인 셈이다. 잘려 마땅하다.
8월말까지 츨근하기로 했으니 한 닷새 남았다. 그 중 쉬는 날을 빼면 오늘 포함 사흘, 그 마지막 시간을 최진석교수의 이 책을 읽기로 한다. '시선의 높이가 삶의 높이'라는 저자의 말. 손톱 만큼이라도 높여서 파주를 떠나자. 아니 파주가 나를 손톱만큼이라도 높여주는 것을 보며 떠나자 하는 심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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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다. '新中國'이다. 이 신중국은 결국 철학적인 혁명이었다. 중국의 중심철학이 유교에서 서양의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이동한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서양에 당한 굴욕을 회복,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개혁의 방향은 결국 병참이나 체제가 아닌 문화고 사상이고 철학이었다.
일본은 1874년에 철학이란 관점을 갖기 시작했고 중국은 1917년에 이르러서야 문화운동이나 정치적 맥락에서 접목하고 시도했다. 1926년 경성제대에 철학과가 만들어 졌다. 이때 이미 일본에서는 철학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철학은 어떤 높은 차원의 것을 아는 것의 문제가 아니고 높은 차원의 시선을 갖고 발휘하는 차원의 문제이다.
모든 철학은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것을 수입하는 사람들은 그 시대에 담겨 잇던 바람 소리나 시장의 소란이나 땀 냄새들은 모두 빼버리고 관념적인 논의나 도덕적인 주장들만 받아들여 교조적으로 내면화한다.
.. 철학적으로 튼튼한 사람은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고 새로운 빛을 발견함으로써 세계에 진실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시인도 그렇지 않을까?)
철학적 지식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은 기실 명사와 같이 쓰이지만, 동사처럼 작동할 때만 철학이다. 자신의 시선과 활동성을 철학적인 높이에서 작동시키는 것이 철학이다. 그래냐 창의력이나 상상력이나 윤리적 민감성이나 예술적인 영감 같은 것들이 가능해진다.
'질문-독립적 주체 - 궁금증과 호기심 - 상상력과 창의성 - 시대에 대한 책임성 - 관념적 포착 - 장르 - 선도력 - 선진국'
선진국은 이렇게 형성된다.
인간의 동선, 즉 인간이 그리는 무늬를 파악한 다음에 언어의 수사적 기법을 사용해 감동을 생산하고, 그 감동을 매개로 그것을 알게 해주려는 시도가 바로 문학이다. 사건들의 유기적 연관을 통해서 그것을 알게 해주려 하면 사학이 된다. 세계를 관념으로 포착하여 그 관념들의 유기적 연관을 통해서 알게 해주려는 노력, 바로 철학이다. 색으로 표현하면 미술이고, 소리로 표현하면 음악이다. 형상적인 다양한 방법으로 그것을 알려주려는 시도가 바로 예술이다... 문명의 방향을 제시하고 인류의 본질을 새로 규정하고자 덤비는 단계에 이른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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