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성을 파괴한 현대음악의 효과는 행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것과의 만남이 가져오는 기괴한 매력에 있다. - 추상화와 난해詩 또한 그렇지 않은가?
독자는 한 텍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야 한다는 의무를 걸머질 필요는 없다. 텍스트는 독자의 주체를 지배하거나 통제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주체로 하여금 전혀 엉뚱한 영역을 향해서 自己展開를 하게 할 수 있다. - 맞는 말이다. 텍스트는 내게 의무를 강요하지 않는다. 나 스스로 강박과 열등감에 빠져 억지로 읽을 뿐..
예술작품은 도리어 서로 다른 여러 사람에 의한 원심적 확장을 통해서 그 존재 의의를 획득한다. 예술작품이 애초에 겨냥하지 않았던 엉뚱한 수용자들에게 엉뚱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그것이 누릴 수 있는 아이로니컬한 특권이다.
작곡가의 악보는 골격에 지나지 않으며, 연주자가 그것에 살과 피를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 음악이 생명을 얻고 청중에게 호소할 수 있다. 원전으로 돌아가야 납득할 만한 연주가 된다고 믿는 것은 한낱 환상에 불과하다 - 피아니스트 호르비츠(Horowitz)
기독교와 마르크시즘의 세 가지 공통점
1. 역사를 오직 인류의 역사로서만 서술하고 그 종점에 낙원을 상정하는 것.
2. 역사의 종말에 올 유토피아(인간의 종국적 구원과 계급 없는 사회)의 관점에서 현재와 과거를 역조명하는 것.
3. 가장 큰 해독 - 미래의 낙원에 대한 환상을 절대적 신앙으로 삼아서 현재의 인간을 억압하고 기만하기 위한 조직화된 권력을 행사하는 것.
*3번은 마르크시즘 보다는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에 더 해당되는 말이라 생각된다.
인간이 만든 허구가 마치 실체처럼 되어버리고, 인간은 그 사이비 실체에 의지하고 지배를 받고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삼기도 한다. 그것이 특히 神의 경우이다.
2012. 현대문학
'이야기舍廊 > 책과 문화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엔트로피 / 제레미 러프킨 (0) | 2020.09.07 |
---|---|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 김종철 (0) | 2020.08.30 |
탁월한 사유의 시선 / 최진석 (0) | 2020.08.25 |
초예측 /유발 하라리 외 (0) | 2020.08.24 |
채근담 / 홍자성 (0) | 2020.08.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