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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숲에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있다
나 오래 침엽의 숲에 있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감각을 곤두세운 숲의 긴장이 비명을 지르며 전해오고는 했지. 욕망이 다한 폐허를 택해 숲의 입구에 무릎 꿇고 엎드렸던 시절을 생각한다. 한 때 나의 유년을 비상했던 새는 아직 멀리 묻어둘 수 없어서 가슴 어디께의 빈 무덤으로 잊지 않았는데
숲을 헤매는 동안 지상의 슬픈 언어들과 함께 잔인한 비밀은 늘어만 갔지. 우울한 시간시 일상을 차지했고 빛으로 나아갔던 옛날을 스스로 가두었으므로 이끼들은, 숨어 살아가는 것이라 여겼다. 새를 묻지 못한 사람이 포자의 눈물 같은 습막을 두르고 숲의 어둠을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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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막'의 시인 박남준.
그가 다 떨쳐내고 산중의 적막이 되기 전
아직 오래 슬프던 시절의 詩들이 담긴 시집.
최영미시인은 '욕망의 폐허'에 서있다 말했다.
내 보기엔 그곳까지는 아직 좀 걸음이 남은
욕망이 패배하는 과정이라 여겨지는 詩들이다.
마음이 서러워 詩로 온전히 정제되지 못한 시절,
시인의 마음을 보는 일은 더 서럽다.
다행이라면 그때는 지금으로부터 25 년전이라는 것.
시인은 이미 오래 전에 그 곳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창작과비평.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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