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바람의 사생활 /이병률

취몽인 2020. 10. 14.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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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습격

백화점 정문에서 나를 만나기로 한 약속

일찍 도착한 나는 서 있기도 무엇해 백화점 안을 둘러보는데 미리 와 있는 나는 혼자 뭔가를 먹고 있습니다

저녁이나 먹자고 한 건데, 뭔가 잘못됐나도 싶지만 어엿한 정각이 되고 나는 모르는 척 백화점 앞에서 나를 만납니다

따뜻한 것이 먹고 싶다며 골목을 돌고 돌아 나를 데리고 찾아간 식당, 당신은 태연하게 백반을 먹기 시작합니다

연거푸 술잔을 비우며 우적우적 가슴 안으로 몰아넣고 있는 저 일은 무슨 일일까 생각합니다

그때 오래전부터 당신이 나를 미워했다는 사실이 자꾸 목에 걸립니다

혼자이다가 내 전생이다가 저 너머인 당신은

찬찬히 풀어놓을 법도 한 근황 대신 한 손으로 나를 막고 자꾸 밥을 떠넣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병률 . 2006. 창비


분명 잘 쓴 詩인데
나는 잘모르는 詩들.^^
늘 떠나는, 이별하는, 바람이 되는 詩와 시인.
이곳을. 너를, 지금을, 나를 떠나는..
바람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나또한 허적허적 날리지만 그 뜻은 모릅니다.
그저 바람이 뭔 노래를 부르는구나,
사람도 바람일 수 있구나 생각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