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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님의 동백가지 꺾는 소리
어떤 꽃가지들은 부러질 때 속 시원하게 부러진다
가지를 꺾는 손이 미안하지 않게
미련을 두지 않고 한번에 절명한다
꺾는 손이나 꺾이는 가지나
고통을 가능한 한 가장 적게 받도록
아니, 기왕에 작심을 하였으면
부러지는 소리가 개운한 음악소리를 닮을 수 있도록
아무도 모르는 급소를 내어준다
광안리 성베네딕도 수도원
65년부터 여기에 있었다고
얼마 전 영정사진을 찍어놓았다고
암투병 중인 수녀님이 선물로 동백가지를 끊는다
뚝,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마치 오랜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단번에 가지 꺾이는 소리,
세상 뜰 때 내 마지막 한마디도 저와 같았으면
비록 두려움에 떨다가도 어느 순간
지는 것도 보람인 양
가장 크고 부드러운 손아귀 속에서 뚝,
꽃보다 진한 가지 향을 뿜어낼 수 있었으면
-손택수.<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2014.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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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들을 읽다보면,
당연히 시인들의 부모들도 세상을 떠나고,
그렇게 시인인 아들을, 딸을 떠나면서
그 시인들에게 詩 한 열 편씩은 인사로 남겨주고 떠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대부분,
떠나는 분들은 잘 떠나시고
남은 시인들은 입으로 욕을 하건 울건 간에
속으로는 모조리 후회를 쏟는다.
한 생, 특히 내 뿌리가 닿은 생이 사라지는 시간은
썩은 내 줄기를 아파하는 시간이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도
순하고 다정하고 서러운 시들을 읽으면서도
시집 중간에 박힌 부모의 죽음,
그 한숨 속에서 나 또한 열 편의 詩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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