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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
창밖 호암은 응달에 그제 내린 늦눈을 아직 간직하고 있지만 그 주변 마른 가지들은 아마 몸이 달아있을 것입니다. 삼월이니까요. 남쪽에는 벌써 핀 꽃들 이야기가 들리고 처녀 아이들 미뤄둔 결혼 준비 소식도 자주 들립니다. 삼월이니까요.
이 들썩들썩한 삼월을 맞으며 저도 이런저런 준비들을 하고 있습니다. 범띠니까 우리 나이로 예순. 내년이 환갑인데 뭐 별 의미는 없지만 괜히 몇 가지 매듭 짓는 일들에 손을 대게 됩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철든 이후로 평생 제일 오래 무소속 룸펜 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어둔 돈도 없고 아직 씀씀이는 크게 줄지 않았으니 한 십년은 더 돈벌이를 해야 합니다. 어디 써주는 데는 없고 공력을 들이는 글쓰기는 재주가 하찮으니 취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니 궁여지책으로 개인택시 운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금을 마련하고 면허양수 자격에 필요한 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삼월엔 그것들을 하나하나 처리해야 합니다. 오는 유월쯤이면 내 택시를 몰고 돈 벌러 나가지 싶습니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날이 오면 하리라 오래 미뤄뒀던 선친 산소를 정리해야 합니다. 40년 누워계신 산소 문을 열어 햇빛 한번 보여드리고 화장해서 어머니랑 같이 바다로 보내드릴 작정입니다. 저는 딸만 둘이고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독신이라 제가 세상을 떠나면 산소건 봉안당이건 돌보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이 봄에 이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마음만 먹어도 가슴이 무지근해지는 일이긴 합니다. 부모님들의 세대를 그리고 내 세대를 정리한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를 처음 만난 건 국민학교 육학년 때였습니다. 그때도 삼월이었지요. 새 담임선생님은 동화작가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동시를 가르치고 개인 문집을 만들게 하셨지요. 그렇게 난생 처음 시라는 걸 써봤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평생 내 옆구리에 매달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고등학교때 문예부 활동을 할 때 잠깐 집중하기는 했지만 그 전후 대부분의 시간은 시의 문지방만 들락거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놈은 떠나가지 않고 아직도 내곁에 모질게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누가 알아줄 만한 재주도 없지만 몇 친구들이 김시인이라 불러주는 과분한 대접에 보답하고자 시집을 한권 묶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출판해줄 곳이 있을리 만무하니 아마 자비량으로 낼듯 합니다. 어쨌든 이 삼월에 오래 만져온 원고들 퇴고를 마칠까 합니다. 더 끼고 있어봤자 때만 낄뿐 못난 꼴이 나아질 터도 없으니 이쯤에서 마무리 짓는게 낫다 싶어서지요. 책으로 나오는 건 아마 일년 뒤쯤 환갑 되는 삼월이 아닐까 싶네요. 삼월이 좋으니까요.
이런 일들이 차곡차곡 한 삼월입니다. 종일 집에 있지만 나름 바쁘겠죠? 아, 한 가지 더 있네요. 좀 더 살 수 밖에 없으니 망가진 이빨들을 손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내 것들 뽑고 볼트 이빨을 박을 겁니다. 그것도 삼월과 함께 합니다. 우리 큰 딸이 봄처럼 태어난 삼월. 저도 새봄 같은 내일 준비에 바쁘답니다. 삼월이니까요.
210304
삼월
창밖 호암은 응달에 그제 내린 늦눈을 아직 간직하고 있지만 그 주변 마른 가지들은 아마 몸이 달아있을 것입니다. 삼월이니까요. 남쪽에는 벌써 핀 꽃들 이야기가 들리고 처녀 아이들 미뤄둔 결혼 준비 소식도 자주 들립니다. 삼월이니까요.
이 들썩들썩한 삼월을 맞으며 저도 이런저런 준비들을 하고 있습니다. 범띠니까 우리 나이로 예순. 내년이 환갑인데 뭐 별 의미는 없지만 괜히 몇 가지 매듭 짓는 일들에 손을 대게 됩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둔 지 반년이 지났습니다. 철든 이후로 평생 제일 오래 무소속 룸펜 생활을 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벌어둔 돈도 없고 아직 씀씀이는 크게 줄지 않았으니 한 십년은 더 돈벌이를 해야 합니다. 어디 써주는 데는 없고 공력을 들이는 글쓰기는 재주가 하찮으니 취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니 궁여지책으로 개인택시 운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자금을 마련하고 면허양수 자격에 필요한 교육도 받아야 합니다. 삼월엔 그것들을 하나하나 처리해야 합니다. 오는 유월쯤이면 내 택시를 몰고 돈 벌러 나가지 싶습니다.
작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그 날이 오면 하리라 오래 미뤄뒀던 선친 산소를 정리해야 합니다. 40년 누워계신 산소 문을 열어 햇빛 한번 보여드리고 화장해서 어머니랑 같이 바다로 보내드릴 작정입니다. 저는 딸만 둘이고 하나밖에 없는 동생은 독신이라 제가 세상을 떠나면 산소건 봉안당이건 돌보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 그래서 이 봄에 이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마음만 먹어도 가슴이 무지근해지는 일이긴 합니다. 부모님들의 세대를 그리고 내 세대를 정리한다는 느낌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시를 처음 만난 건 국민학교 육학년 때였습니다. 그때도 삼월이었지요. 새 담임선생님은 동화작가였습니다. 아이들에게 동시를 가르치고 개인 문집을 만들게 하셨지요. 그렇게 난생 처음 시라는 걸 써봤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평생 내 옆구리에 매달리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고등학교때 문예부 활동을 할 때 잠깐 집중하기는 했지만 그 전후 대부분의 시간은 시의 문지방만 들락거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놈은 떠나가지 않고 아직도 내곁에 모질게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쩌겠습니까. 누가 알아줄 만한 재주도 없지만 몇 친구들이 김시인이라 불러주는 과분한 대접에 보답하고자 시집을 한권 묶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출판해줄 곳이 있을리 만무하니 아마 자비량으로 낼듯 합니다. 어쨌든 이 삼월에 오래 만져온 원고들 퇴고를 마칠까 합니다. 더 끼고 있어봤자 때만 낄뿐 못난 꼴이 나아질 터도 없으니 이쯤에서 마무리 짓는게 낫다 싶어서지요. 책으로 나오는 건 아마 일년 뒤쯤 환갑 되는 삼월이 아닐까 싶네요. 삼월이 좋으니까요.
이런 일들이 차곡차곡 한 삼월입니다. 종일 집에 있지만 나름 바쁘겠죠? 아, 한 가지 더 있네요. 좀 더 살 수 밖에 없으니 망가진 이빨들을 손보고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내 것들 뽑고 볼트 이빨을 박을 겁니다. 그것도 삼월과 함께 합니다. 우리 큰 딸이 봄처럼 태어난 삼월. 저도 새봄 같은 내일 준비에 바쁘답니다. 삼월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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