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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차례
삼년전 어느 길가 북새에서
마른 꽃대에 매달린 정구지 씨앗 한 주먹
털어 담아 왔었다
아이 얼굴만한 화분에
좌르르 쏟아 얼금얼금 덮고 잊어버렸다
이듬해 봄
더벅머리 총각 머리숱처럼 빽빽한 잎 돋았다
가을이면 화르르 주저앉고
그 다음 봄에 또 파란 숱 가득하다
가을에 곧장 시들었다
꽃 한 줄 못피우고
경칩 지난 작은 무덤에
또 간난쟁이 앞니처럼 새 잎 포릇 솟아 오른다
삼년 동안
올해는 네가 나가고
내년엔 또 니들이 나가고
삼년째 이제는 니들 차례다
지들끼리 순서라도 정해둔 것일까
잔뿌리 빽빽한 작은 행성에서
제 차례를 기다렸을 새까만 정구지 씨앗들
이번에는
하얀 별빛 같은 꽃송이 몇이나 피워낼려나
아직도 엎드려
속절없는 제 차례 기다리는 친구들 위해
또 그냥
줄기만 폈다 접고 비켜줄려나
210307
꽃 차례
삼년전 어느 길가 북새에서
마른 꽃대에 매달린 정구지 씨앗 한 주먹
털어 담아 왔었다
아이 얼굴만한 화분에
좌르르 쏟아 얼금얼금 덮고 잊어버렸다
이듬해 봄
더벅머리 총각 머리숱처럼 빽빽한 잎 돋았다
가을이면 화르르 주저앉고
그 다음 봄에 또 파란 숱 가득하다
가을에 곧장 시들었다
꽃 한 줄 못피우고
경칩 지난 작은 무덤에
또 간난쟁이 앞니처럼 새 잎 포릇 솟아 오른다
삼년 동안
올해는 네가 나가고
내년엔 또 니들이 나가고
삼년째 이제는 니들 차례다
지들끼리 순서라도 정해둔 것일까
잔뿌리 빽빽한 작은 행성에서
제 차례를 기다렸을 새까만 정구지 씨앗들
이번에는
하얀 별빛 같은 꽃송이 몇이나 피워낼려나
아직도 엎드려
속절없는 제 차례 기다리는 친구들 위해
또 그냥
줄기만 폈다 접고 비켜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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