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식구

改葬 1

취몽인 2021. 4. 29.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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改葬 1

  습이 많이 찼구먼요. 그런 셈치고는 잘 가셨네유. 젊어서 돌아가셨나보네유. 치아가 곱게 남았네유. 사십년이라는데 참 용한 일이지유. 베옷이 참 질기지유. 살이 다 녹고 뼈가 삭는 동안에도 삼베는 여즉 그대로잖아유. 남은 유골을 꽉 붙들고 있지유. 그 베 머리를 잡아당기면 쑥 온몸이 딸려나오지유. 보세유. 겨우 발목 하나만 빠지고 다 나왔잖어유. 발치께 조금만 파면 빠진 발목도 나올거유. 갈비뼈가 없다구유? 갈비뼈는 제일 먼저 녹아유. 그 다음엔 척추가 녹구유. 틀을 짜고 버티는 것들은 제 할 일 끝나면 먼저 사리지는 법이유. 그 참 치아가 어찌 저리 멀쩡할까유.

  파헤쳐진 무덤 옆에 깔린 하얀 전지 종이 위에 아버지는 대충 위 아래 순서로 얼기설기 누웠다. 사십년 만의 햇발은 유난히 눈부셨지만 흙 묻은 아버지의 두 눈은 그저 깊었다. 그 아래 단 한 개의 이탈도 없는 윗니들이 가지런 했다. 생전처럼 말 없이 앙 다문 채 곁눈질로 늙은 아들 둘을 바라볼뿐. 들을 수 없는 검은 뼈의 아버지에게 한숨 두어 번 건네고 형제는 산을 내려왔다. 일흔 다 돼 보이는 사내들은 빈 무덤을 벌겋게 덮으며 거참 이빨이 대단하네. 실 없는 소리만 자꾸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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