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식구

두물머리에 서서

취몽인 2022. 2. 14. 11:29
.
두물머리에 서서
딸에게


네 결혼을 앞두고
시 한편 건네자 오래 마음 먹었다

한 일 년을
실감이란 말에 매달렸다

네가 핏덩이로 내게 온 것도
네가 오늘 결혼을 하는 것도
아빠에겐 참 실감나지 않는 일
하지만 그 말은 너무 무책임 하더구나

그러다 얼마 전
강가에 서서 문득 생각했다

삼십 몇 년 전
어느 낯선 기슭에서
맑은 샘물 한방울이 솟았고

이태 뒤
또 어느 숲속 풀잎 위에서
이슬 한 방울 떨어졌을 것이다

두 방울 물은 따로
바위틈을 비집고 실개천을 따라 흐르다
조그마한 시내를 이뤘겠지

하나는 너른 들판을
하나는 푸른 계곡을
부딪히고 넘어지며 흘러왔겠지

그런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여기
따로 또 같이 두물머리에 닿은 너희 둘

이제는 강이 될 시간이다

우리가 전에 흘러
네게 새긴 물길은 모두 지워버리고

빛나는 파도와
가슴 씻는 바람 헤치고
넓게 흐르는 젊은 강이 되었음 좋겠다

두 물이 합쳐지면
흙탕도 잠시 일겠지

그래도 한 물이 닿지 못하는 곳
두 물이면 갈 수 있단다

두 손 모아 여울을 휘감고
하나되어 큰 강이 되거라

먼저 바다 앞에 선 우리는
이제는 작은 별빛

오늘 두물머리 지나
푸르게 흐르다
어느 모퉁이에 부딪혀 아플 때면

그저 한 번 바라보고
다시 손흔들며 흘러가거라
이제 이 강은 너희의 것
우리는 하구에서 노을처럼 응원하마

내 딸과
내 사위가 일으키는 세찬 물보라가
온 세상을 이기는 시간을

오래 오래 사랑하며
응원하마

이제 막
두물머리에 닿은
사랑하고 사랑하는 내 딸아

21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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