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딸과 함께한 마지막날들을 위하여

취몽인 2021. 7. 11.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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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온전한 휴일. 책상 위에 놓인 큰딸이 읽은 책을 읽는다. 어쩌면 제가 다 읽고 나를 읽으라고 내 책상에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제목이 '아버지와 함께한 마지막 날들.' 썩 유쾌해보지지 않은 제목이다.^^ 저자인 필립 톨레다노는 사진작가다.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낸 백세 가까운 아버지와의 이별 과정을 사진으로 남기고 짧은 글을 보탠, 거의 사진집에 가까운 책이다. 아버지는 단기기억상실증에 시달리며 최후의 시간을 보낸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가 안타까우면서도 아쉽다. 오래된 관계의 이별이란 대부분 다 그런 것이다. 나 역시 어머니가 떠난지 이제 열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아쉬움은 바지가랭이끝에 매달려 툭하면 나를 잡아 당긴다.

내 큰 딸은 이제 서른셋. 우리 부부는 환갑 코앞. 나도 슬슬 떠날 시간을 의식하기 시작했고 그런 이야기를 가족과 한 적도 있다. 아마 딸애도 그런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그탓인지 요즘 부쩍 건강관리에 대한 잔소리가 잦다. 이별은 무섭고 힘든 일이니 최대한 건강하게 유예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엄마아빠는 더욱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 잔소리의 핵심이다.

세월은 이렇게 흘러버렸다. 녀석이 어릴 적 유난히 몸이 약해 걱정이 많았는데 그 걱정의 몫이 이제는 녀석에게로 넘어가고 우리 부부가 그 걱정의 대상이 됐다. 물론 당분간은 별 문제가 없을 나이이고 글쎄 한 십 년 뒤쯤에는 피부에 와닿을 수는 있겠지. 하지만 매사 꼼꼼한 녀석은 지금부터 단도리를 해야겠다 마음 먹었나보다.

책의 마지막에 아버지와 아들은 당연히 작별한다.
아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가 이렇게 세상을 떠나시게 되어 한없는 안도감을 느낀다.

지난 삼 년의 시간이 내겐 행운이었다. 말하지 못한 채 가슴에 묻어둔 이야기 같은 건 하나도 없다. 그 시간 동안 서로 바닥까지 다 보여주면서도 한 점 후회나 동요 없이 우리는 사랑했다. 당신의 자식이 이룬 것에 대해 아버지가 자부심을 느끼셨음을 알 수 있었다. 또 아버지가 얼마나 재미있는 분인지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보다 더 큰 선물이 있을까.'

이런 기쁨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을 것 같다. 조금씩 준비하면 좋을 것이다. 딸이 그말을 하고싶어 이 책을 내 책상위에 뒀으리라 맘대로 짐작한다.

잘 알아들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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