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젖은 눈 / 장석남

취몽인 2021. 7. 17. 21:16

.
돌멩이들


바다 소리 새까만
돌멩이 너덧 알을 주워다
책상 위에 풀어놓고
읽던 책 갈피에도 끼워두고 세간
기울어진 자리도 괴곤했다
잠 아니오는 밤에는 나머지 것들
물끄러미 치어다도 보다가 맨 처음
이 돌멩이들 있던 자리까지를
궁금해하노라면,

구름 지나는 그림자에
귀 먹먹해지는 어느 겨울날 오후
혼자 매인
늦둥이 송아지 눈매에 얹힌
낮달처럼
저나 나나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듯 외따로 있다는 것이,

-장석남시집 <젖은 눈>중. 문학동네. 2009

-------------------------------------------------

장석남 다시 읽기 네 권째.

싸리울이어도 좋고 탱자나무울이어도 좋다. 키 낮은 돌담이면 또 어떠랴. 그 발치에 채송화 몇 봉숭아 또 몇 오종종 피어있는 햇빛 가득한 마당이 있는 집. 툇마루에 조용히 앉아 침묵하는 존재를 바라보는 한 사람 시인이 있으니 내가 시집에서 만나는 장석남이 그다.

바다만큼 넓은 마당이 있을까? 온 바다를 마당 삼은 덕적도가 고향인 덕일까, 시인은 조용하고 너른 수평의 공간에 익숙하다. 그 환한 마당에는 멀쑥히 서있는 감나무 한 그루, 그 위를 가끔 다녀가는 작은 새, 물끄러미 바라보는 낮달, 그 사이를 잇는 소식 같은 바람 같은 존재들이 제각기 무슨 궁리들을 하고 있고 시인은 무심하게 그것들의 속내를 살핀다.

장석남의 詩들은 이렇듯 논리가 없다. 그저 제자리에 있는 것들과 그것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이 있을뿐이다. 그런데 그런 밍밍한 풍경이 마음 속에 울림을 일으킨다. 그것이 장석남의 탁월함이다. 가만 있는 것들의 목소리를 끄집어내되 어떤 억지도 없다. 입 다문 것들은 입 다문 대로 흔들리는 것들은 흔들리는 대로 아무 말 없는 말을 전한다. 그 목소리를 듣는 일이 詩를 읽는 일이다.

때로 소멸을 향하거나 허무의 냄새가 난다 말하는 이들도 있다. 각자 이 행성의 존재로 어쩌다 태어나 스러져가는 것이 이치일 진데 어찌 허무를 그저 무용한 감정이라 하겠는가.
다만 그 감정이 사람의 것만은 아니라고, 지나는 바람이나 바닷가를 뒹굴다 어쩌다 시인의 책상 위에 놓여진 돌멩이 몇에게도 허무는 여전하다고 시인은 그린다.

그 목소리가 마당에 떨어져 한 조각 사금파리로 반짝일 때 존재들이 잠깐 눈을 깜빡이며 당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낄 수 있는가? 시인은 그 일에 매우 익숙한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