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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_만나는_공자
새롭게 만나는 공자
주말 동안 그간 읽고있던 책을 덮고 친구의 책을 읽었다. 법학자가 쓴 고전(논어) 다시 읽기가 꽤 궁금했던 탓이다.
친구와 나는 고3때 한 반이었다. 공부를 잘했던 친구는 서울법대를 갔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 40여년 간 딱 두 번 정도를 만난 것 같다.
책을 받아보니 내가 얼추 짐작으로만 알고 있었던 친구의 이력이 표지 안쪽 첫 페이지에 적혀 있었다. 사법고시를 당연히 합격했지만 법조계로 가지않고 케임브리지 교수로, 고대로스쿨 교수로 학문을 이어가는 인생을 살고 있는 친구. 계동 근처 뒷편 어느 골목에 직접 집을 지어 살고 있는 친구. 아이들은 프랑스에 살고 있는..
헌법학자로 알고 있는 그가 느닷없이 공자를, 논어를 말하는 책을 냈다는 소식을 페북에서 처음 봤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왠 공자? 왠 논어?
책 속에서 친구는 시종일관 공자의 생각이 왜곡되고 있는 점을 예리하게 지적한다.
배움에 대한 주장, 효와 예의 아전인수, 덕과 인에 이르는 바름의 기준 등이 후대 책상머리 학자들과 정치 이데올르기 따위에 휘둘려 본래의 뜻을 잃었음을, 그리고 결과적으로 공자의 善이 이용자들의 惡으로 바뀌어 원치않는 해악의 텍스트로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왜곡된 텍스트에 대한 안타까움 이상으로 공자 당시나 사후의 일정 시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악한 권력 이데올르기의 폭력성에 대한 자각과 공자가 주장한 행동하는 지식의 중요성을 거듭 이야기 하고 있다.
친구가 평소 조국사태나 사법개혁에 목소리를 높여온 이유가 공자와 논어의 정확한 이해에 닿아있음을 알 수 있어 든든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이 책을 낸 이유도 짐작할 수 있었다.
번역된 詩는 詩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역사와 문화가 전혀 다른 언어로 된 정신을 역시 전혀 별개의 문화적 소산인 다른 언어로 전달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 하단 말이다.
공자 또한 그 시대의 상황 속에서 자신의 주장과 철학을 설파했을 터. 하지만 후대는 또 다른 가치와 환경의 울타리속에서 자신의 가치에 맞게 윤색을 거듭하고, 그 결과 공자는 본의 아니게 꼰대가 되고 말았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가 헤브라이즘을 자본주의 합리화의 수단으로 변질시킨 것과 다르지 않은, 인류 정신 자산의 큰 손상이라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사다리를 걷어차고 기득권을 사수하고자 하는 이들의 자제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로스쿨에서 친구가 자칫 외롭지 않을까 걱정도 든다. 그 친구들 탓은 아니겠지만 이미 그 자리에 서서 사법권력을 누리고자 하는 대열에 선 이들이 친구의 말을 곱게 들을까 싶어서이다..
솔직히 공자나 논어에 대해 깊이 공부해 본 적이 없어 친구의 책을 더 잘 읽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하지만 교조주의의 사악함과 위험성을 다시 한번 인식하는 것 만으로도 친구의 덕은 크다.
어쨌던 새해에는 논어를 다시 읽어볼 것이다
#김기창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