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에세이

잊지말아야 할 것들

취몽인 2022. 1. 17. 11:14

환갑이다. 60년을 살았다. 

 

문득문득 드는 생각이지만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 날이 턱없이 짧을 것이다. 얼추 따져보면 길게 살면 20년, 하지만 앞으로 10년 내에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나이가 됐다. 10년, 3,650일. 지금처럼 하루하루가 속절없이 지나가는 속도를 생각하면 금방 다 까먹을 수 있는 숫자다. 아껴서 잘 써야할 숫자이기도 하다.

 

지극히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보면 꿈 같다. 상투적이라는 말은 결국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공히 느낀 사실이라는 뜻도 된다. 모두들 꿈 같은 세월을 살다 뒤돌아보고 뒷걸음으로 걷다 뚝 떨어져 이 생을 마친다. 꿈은 그렇게 툭 깨거나 아연 끝나는 법이다. 

 

타고난 유약함과 게으름으로 세상이 말하는 성공이란 건 해보지 못했다. 늘 누군가가 부러웠고 스스로는 한심했던 꿈이었다. 하지만 누군가 말했듯이 이즈음이면 처지는 다 비슷하기 마련이다. 장관을 했던 친구나 수백억 축재를 한 친구나 모두 무료하다. 십 수년전 동창회를 나가면 저 잘난 모습에 어깨를 높이던 이들도 모두 은퇴했다. 그 언저리에서 기죽어있던 친구들도 이제는 오래 무거웠던 짐들을 좀 내려놓고 조금은 느긋해져 있을 것이다. 선 자리는 여전히 높낮이가 있을 것이지만 슬슬 끝이 보이는 눈꼬리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유엔이 정한 장년의 시작은 65세다. 그러니 환갑 정도는 아직 청년이라고 생물학적 세계가 주장한다. 그럴수도 있다. 아직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아 열정을 불태우는 친구도 있을 것이고 부족한 시간을 안타까워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이제부터는 평생 매달렸던 욕망을 좀 내려놓고 남은 시간을 좀 안락하게 사는 데 집중하자 생각하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이다. 

 

앞에 놓인 3,650일을 행복하게 살고 싶다. 이 말은 지나온 21,900일이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그 날 중에는 행복했던 시간들도 많았다. 굳이 상대적인 비중을 따져본다면 행복했던 날들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은 나만의 것일까?

 

3,650일을 행복하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그저 계산하기를 그만두고 싶다. 남은 날수를 세고 있는 처지에 계산을 그만둔다는 말이 좀 우습긴하다만 따지지 말자. 살면서 너무 많은 계산을 하고 살았다. 이해타산을 따지고, 주변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고 살았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돈을 세고 살았던가? 부족한 돈, 벌어야할 돈, 쓸 돈, 모아야할 돈, 갚아야할 돈, 돈 돈 돈. 지난 날의 불행은 결국 뭔가를 세는 데 빠져있었던 탓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이젠 그만하자 싶다. 센다고, 따진다고 되는 일이 아님은 60년 동안 원없이 느껴왔지 않은가.

자식들 다 독립하고 마눌하고 나만 살면 된다. 뭐 큰 돈 들 일 없지 않은가? 물론 아직 돈이 더 필요한 경우도 있어 배부른 소리 한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또한 수 년 지나면 모두 얼추 비슷해지리라 생각한다.    

 

그 다음은 지금 즐거운 일들을 더 많이 하고 싶다. 오래된 친구를 만나 소주도 한잔하고 당구도 치고 어디 여행이나 낚시도 같이 가고 싶다. 그동안 못했던 취미생활도 좀 하고, 첫사랑과의 발자취도 새삼스럽게 한번 더듬어보고 싶다. 불가능에 가깝지만 젊은날 속수무책 가슴을 뜨겁게 했던 사랑을 딱 한 번만 더해봤으면 좋겠다. 분명 지금은 더 잘할 수 있을텐데. 어쩌면 누군가는 이미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3,650일을 즐겁게 지내고 그 나머지 시간이 있다면 잘 떠날 준비를 하며 보내고 싶다. 황혼을 등지고 지난 세월을 웃으며 바라보는 시간도 그리 나쁘진 않으리. 그렇게 저물면 좋지 않겠는가?

 

그러니 친구들이여, 나의 행복을 좀 도와주시라. 얼굴 한번씩 보고, 여전한 객기도 좀 부리고 얼큰하게 집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좀 허락해주시라. 술값은 뿜빠이 하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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