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2습작

내가 아직 자라는 이유

취몽인 2022. 2. 14.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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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직 자라는 이유


정수리는 자꾸 비워지는데
나머지 터럭들은 부지런히 자란다
얼마 전에 깎은 것 같은데
손톱은 또 그새 길게 자랐다
눈썹이 그렇고
발톱도 그렇다

동네에서 제일 키 큰 여자였던
구순 어머니도 이제 쪼그라들었다
나이가 들면서 대부분 더 이상 자라기는 커녕 줄어드는데
굳이 극성스럽게 자라는 것들은 무슨 속셈일까

죽은 뒤에도 손톱과 모발은 잠깐 더 자란다는 말도 들었다
온 몸의 끝에서 자라는 것들
뾰족하게 내밀어
어딘가에 닿고 싶은 것일까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쉬 닿지 않는 새끼발가락 굽은 발톱을 깎는다
무릎에 눌린 가슴으로 물어본다
어딜 가느냐고
그만 가라고
끝만 자꾸 나서서 뭘 하겠느냐고

20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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