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2022습작

그때 나는 어디 있었을까

취몽인 2022. 2. 14.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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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어디 있었을까


긴 테이블이 놓인 술집에서 한 남자가 두들겨 맞고 있다 얌전히 앉아 고스란히 얻어 터지고 있다 때리는 남자도 맞는 남자도 한 마디 말이 없다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고 눈두덩이도 시커멓게 멍들었다 밤 아홉시 형광등 불빛은 대리석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고 있다 때리고 맞는 두 사람 주변을 열댓 명의 사내들이 둘러섰다 그들도 아무 말이 없다 팔짱을 낀채 충혈된 눈으로
발길질과 주먹질 그리고 쓰러지고 일어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을뿐 반항도 없고 만류도 없다 때리다 지쳤는지 깡마른 남자가 무릎에 팔을 짚고 그 사이로 고개를 떨군다 맞던 사내는 입가로 흐르는 피를 닦으며 다시 자세를 고쳐 앉고 잠시 모든 것이 멈춘다


그래 더 패라
속으로만 말한다
삼십 분 동안 그는 나를 팼고
양반다리로 앉아 나는 점점 더 부숴졌다
술 취한 형광등이 눈부시다
더 이상 아프지 않다
명료하게 죽을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 발길질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는 순간
웃음이 나온다
이런 순간의 삶이란 그저 우스울뿐
의자를 딛고 식탁을 잡고
술집을 나선다
밤은 나를 보고 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누군가 뒤를 쫓아온다
하지만 나는 비틀거리며 없다
오래 전에 나는 그곳을 떠났다
그들은 누군가를 때렸지만
아무도 아닌 자에게 가한 린치였을뿐
피 흘리던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그 광경을 보았을까


2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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