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舍廊/반고개 추억

두류반점

취몽인 2022. 4. 10.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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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류반점


대책없는 창업이었다.
밀가루로 짜장면을 만드는 것보다
나무로 배달통을 만드는 것이 쉬운 아버지는
먹성 좋은 주방장을 들였고
가난한 산밑 동네 사람들은
인사차 한그릇씩 먹고난 이후엔
슬금슬금 피해다녔다.
어떤 날은 주방장 혼자 먹은 볶음밥 한그릇이
그날 요리의 전부이기도 했다.
어쩌다 배달 주문이 오면
국민학교 오학년 아들이 나갔는데
도착하면 짬뽕국물이 하나도 없을 때도 있었다.
딱 석달 하고나니 주방장이 그만 뒀다.
요리 할 일이 없었으니...
두류반점 문 닫아놓고
아버지는 남은 고량주를 굳이 도꾸리에 따뤄 마셨다.
불 붙여 화주도 만들어보고
점점 더 취해갔다.
한달 문 닫고 두류반점은 간판을 바꿔 달았다.
두류만두로
그후 두달 간 아들은 매일 도시락으로 만두를 싸갔다.
그리고 두류만두는
두류만화방으로 바뀌었다.
이번에는 사년 동안 그럭저럭 버텼다.
그 사년, 아들은 수 많은 만화책을 봤고
나중에 그림도 좀 그리는 삼류시인이 됐다.
그리고 짜장면을 집에서 만들어 먹을 줄 아는
괜찮은 아빠도 됐다.
다 두류산 덕분이다.

2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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