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舍廊/詩 읽기

가기 전에 쓰는 글들 /허수경

취몽인 2022. 4. 2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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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기 전에 쓰는 글들

많은 경우, 이미 죽은 사람들의 글을 읽는다.
죽음은 오래 전에 떠나 책에는 그림자도 없다. 그저 잘 살아 있었을 때의 뜨겁거나 미지근한 가슴이 적혀 있을뿐. 우리는 그의 흔적을 읽고 느끼거나 놀라거나 가슴을 쓸어내린다.

여기, 죽어가고 있다는 소문 속에서 죽어간 사람이 죽어가면서 쓴 글이 있다. 읽는 나는 아직 식지 않은 그 소문의 안타까움과 함께 이제는 죽은 그의 글들을 읽는다. 시시껄렁하게 살고싶다 했던 그는 시시껄렁하게 죽어가진 못했다. 소문 때문이다.

죽은 허수경의 아직 산 목소리는 내용과 관계없이 우울하다. 220403

쓴다는 일과 생각한다는 일의 先後를 생각하게 된다. 종일 뭔가를 쓴 시인. 종일 뭔가를 생각해서일까? 종일 뭔가를 쓰느라 생각을 한 것일까? 어느 것이든 詩는 그렇게 어딘가에서 익는 일일 것이다.
220407

허수경 시인의 시작노트를 읽으면 내가 시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된다. 끊임없이 자신을 분열시키는 사람. 그런 사람이 시인이다. 알수 없는 시선과 이해 불가능한 사유의 굴절. 하지만 그도 늘 詩를 고민한다. 그 고민이 분열을 낳는 것 같다. 시인은 분열증 환자다. 나는 분열증이 싫다.
220416

책을 읽으면서 읽는 분량만큼 생각을 하고 또 그 생각의 이십 퍼센트 정도를 쓰게 되는 일, 좋은 일이기도 하지만 답답한 일이기도 하다.
자신의 생각을 끊임없이 쓴 시인의 글이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는 저런데 나는 어떤가? 뭐 이런 생각이 넘기는 책장마다에서 부스러기처럼 흘러내린다.
2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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