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은 보청기센터 공치는 날
물의 요일 水요일에 비가 내립니다. 수요일은 일주일의 중간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15일, 한달의 중간입니다. 또 지금은 유월, 일년의 중간 달입니다. 한 해 한 중간의 시간에 내리는 비가 일년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길 바래 봅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내리는 비가 섭섭하기도 합니다. 보청기센터는 비 오는 날에 고객이 잘 오지 않습니다. 아주 급한 일이 아니라면 궂은 날씨에 어르신들이 외출을 꺼리는 탓이지요. 오늘은 마음 비우고 생각하고 있던 글을 좀 써볼까 계획하고 있습니다.
보청기센터를 운영하다 보니 아무래도 귀, 소리, 듣기 같은 단어들을 많이 접하고 또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세 가지 요소를 요모조모 들여다보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음악의 대위법을 응용해서 세 요소를 삼성대위식으로 구성하는 에세이를 써보고 싶은데 지금은 아직 생각나는 대로 쓰기 시작하는 중입니다. 문제는 이런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블로그 포스팅이 좀 애매 해 졌습니다. 이 블로그는 난청과 보청기 관련 정보를 전달해드리려는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니 정보 또한 그쪽으로 맞추어 쓰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에세이의 주제는 이런 목적성과는 거리를 둬야 하니 양쪽의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 않네요. ㅎㅎ
어제는 예순 후반의 아주머니(?) 한 분이 굿모닝보청기만안센터를 찾아 주셨습니다. 몇 년 전부터 양쪽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았는데 얼마 전 받은 건강검진 결과에 난청이 있으니 보청기 착용을 고려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더군요. 그래서 알아보던 중에 청각장애등급을 받으면 보청기를 국가지원금으로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접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 상담을 받으러 오셨습니다.
무료청력검사를 해보니 양쪽 귀 청력이 모두 50데시빌 근처였습니다. 청각장애진단이 나오는 양쪽 귀 60데시빌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국가지원금 보청기는 좀 어렵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역시 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청각장애등급을 받으면 한쪽 귀 보청기 구입 금액의 90% 이상을 국가에서 지원해 줍니다. 금액으로는 100만원 정도가 지원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100만원을 지원 받는 것보다 내 귀가 장애등급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는 사실이 더 좋은 일입니다. 장애인이 되고 100만원을 잦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닙니다. 아직 장애등급을 받을 정도의 난청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런 말씀을 드렸더니 다소 위안이 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요즘은 워낙 청각장애등급과 국가지원금 보청기에 대한 인식이 많이 확산돼서 그런지 청각장애등급을 받을 정도의 난청이어야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 아니냐는 인식도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니 그런 생각은 오히려 몹시 위험한 생각입니다. 위의 분의 경우 청각장애진단을 받을 정도의 난청은 아니지만 중도난청 수준입니다. 중도난청은 어음분별력이 떨어져 상대방의 말소리를 명료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귀는 점점 더 나빠지기 때문에 난청을 방치하면 수년 내에 정말로 청각장애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둘러 보청기를 착용해서 귀를 더 나빠지지 않게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연히 소리를 잘 들어 삶의 질도 높여야 하구요.
유난히 쇠약해 보이는 고객분은 고민해보겠다고 센터를 나가셨습니다. 아마 형편이 여의치 않은 눈치였습니다. 그럴 수 있지요. 귀는 안 들리는데 보청기는 비싸고, 청각장애등급이라도 받아 나랏돈으로 보청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안된다고 하니 기운이 빠질 수도 있습니다. 뒷모습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꼭 오늘 날씨처럼 어둑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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