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리 나쁜 소리
귀는 열린 대문이다. 늘 열려 있는 귀로 우리는 하루 종일 수많은 소리를 듣는다. 지금 내 귀에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음악이 조용하게 들리고 동시에 열어 둔 창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달리는 버스 소리가 들린다. 음악은 듣기 좋고 자동차 소음은 거북스럽다. 그렇지만 내 귀는 음악소리만 골라서 듣지 못한다. 버스 달리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일어서서 창문을 닫아야만 한다. 왜 음악 소리는 듣기 좋고 버스 소음은 듣기 싫은 것일까?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의 기준은 어떻게 정해진 것일까?
김소연 시인은 우리 마음에 두 개의 귀가 있다고 한다. ‘듣는 귀와 거부하는 귀. 이 두 개의 귀로 겨우 소음을 견디고 살아간다. 지구가 돌아가는 광폭한 소음은 듣지 못하면서 한밤중 냉장고가 돌아가는 소음은 예민하게 듣는 몸의 귀처럼, 고막이 터지지 않을 정도의 소리들에만 반응하는 귀. 칭찬은 받아들이고, 비난은 거부하는 귀. 흉물스러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의 귀. 고운 것을 향해 뻗어나가는 마음의 귀. 호오를 각각 구별하는 귀 때문에 나는 나를 호위할 수 있지만, 그 때문에 나는 나를 안전하게 가둔다. -김소연 <마음사전>’ 듣기 좋은 소리와 싫은 소리를 구분하는 것은 시인의 말처럼 두 개의 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마음에 기준이 있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건 시인의 견해는 심리적인 기준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 같다.
새근새근 잠자는 아이의 숨소리, 대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는 얼마나 좋은가? 그러나 비난하는 소리, 통곡의 소리, 귀를 찢을 듯 달려드는 비행기 소리는 얼마나 거북한가? 사람들은 대체로 잔잔한 소리를 듣기 좋아하고 과하게 시끄러운 소리는 싫어하는 것 같다. 이는 우리 귀가 들을 수 있는 가청 영역과도 어느 정도 상관이 있다. 우리의 귀는 40만 개가 넘는 소리를 구별해서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달팽이관 속에 있는 유모세포의 역할이다. 달팽이관은 외부로부터 들어온 소리를 구별해서 전자신호로 만들어 우리 뇌에 전달한다. 하지만 내게 좋은 소리와 싫은 소리를 구별해서 들을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진 못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좋은 소리와 싫은 소리를 구분할 기준은 소리의 주파수 대역과 관계가 있다. 일상적으로 우리 귀가 듣는 소리의 주파수 대역은 125Hz에서 8,000hz 정도의 범위이다. 한밤중에 들리는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125hz 정도이고 창밖에 직박구리가 우짖는 소리는 4,000hz 정도이다. 특별히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는 주파수 대역은 1,000~2,000hz 정도인데 아주 낮은 소리나 높은 소리는 그 범위 밖에 있다. 그러니까 500~4,000hz 정도 주파수가 좋은 소리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 바꾸어 말하면 귀가 찢어질 듯한 높은 소리나 귀가 웅웅거리는 아주 낮은 소리는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이는 우리 귀의 기능적 한계에 따른 소리에 대한 좋고 나쁨의 기준이고 실제로는 좋은 소리와 나쁜 소리를 구분하는 기준은 훨씬 다양할 것이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들려오는 소리의 내용이다. 컨텐츠라고도 말할 수 있다. 아내의 잔소리, 상사의 질책 소리, 누군가를 욕하거나 싸움 소리는 마음에 불편을 일으키는 나쁜 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칭찬 소리, 격려의 소리, 사랑이 속삭임 같은 컨텐츠는 듣기 좋은 소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좋은 감정을 일으키는 좋은 이야기는 귀의 물리적 기능과는 무관한 것처럼 생각된다. 과연 그럴까? 누군가 당신에게 칭찬을 목청껏 소리지르며 한다면 어떨까? 아내가 미소 가득한 얼굴로 잔소리를 한다면 또 어떨까? 이원론은 대체로 위험하다. 좋은 소리란 아마도 좋은 이야기와 듣기 좋은 소리가 어우러질 때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인용한 김소연 시인의 글을 다시 빌려보면, 우리 귀는 ‘칭찬은 받아들이고, 비난은 거부하는 귀. 흉물스러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마음의 귀. 고운 것을 향해 뻗어나가는 마음의 귀’ 이다. 귀는 감각 기관이다. 인간의 감각은 궁극적으로 뇌에 자극을 주어 반응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데 그 반응의 형태는 어떤 식이건 마음에 영향을 준다. 결국 귀를 통해 들어온 소리는 마음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마음의 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아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한다. 이런 희로애락의 감정들이 귀를 통해 들려오는 소리와도 연결되어 있으니 귀가 곧 마음이라는 말도 할 수 있을 지 모른다.
좋은 소리는 귀에게도 좋고 마음에게도 좋다. 나쁜 소리는 귀를 다치게 하고 마음을 다치게 한다. 세상이 내는 모든 소리를 내 마음대로 걸러 들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좋은 소리를 많이 들으려는 노력은 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하는 말 또한 상대에게 좋은 소리도 될 수 있고 나쁜 소리도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건네는 무심한 나쁜 소리가 내 곁의 누군가의 귀를, 마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한 마디 말의 중요성은 새삼스러울 수도 있다.
메들린 랭글은 ‘우리가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결국 듣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태양을, 별들을, 바람을 듣는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지 않은 분노를, 파괴를, 폭풍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잘 들을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더불어 발화지인 내가 무엇을 말할 것인가 또한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을 위해 좋은 소리를 주고받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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